[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본사업 전환에 관해 석 달 새 말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2월 돌봄업체엔 '본사업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가 이달엔 공개적으로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사실상 사업 중단을 시사한 겁니다. 정부만 믿었던 돌봄업체는 손바닥 뒤집듯 일관성 없는 정부 의사결정에 울상이 됐습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은 맞벌이 가정의 돌봄 비용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고용부와 서울시는 2024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6개월간 시범사업을 한 뒤 본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시법사업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으로 진행하고, 본사업을 하게 되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1200명 규모로 정도로 늘릴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용부는 지난 2월14일 보도자료를 내고, 시범사업 기간을 1년 더 연장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2·3 계엄 후폭풍으로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된 마당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게 불투명할뿐더러 사실상 고소득층만을 위한 사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본사업 전환을 머뭇거리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지난해 8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2일 <뉴스토마토> 취재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한 돌봄업체 A사는 고용부가 시범사업을 1년 더 연장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용부에 사업을 중단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습니다. A사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이 본사업으로 제때 전환되지 않고 추가 외국인 인력도 도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사업을 하는 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사업을 계속해도 되는지 판단하기 위해 고용부의 입장을 확인하기로 한 겁니다.
돌봄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6개월간 시범사업 당시 책정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이용료(가사관리사를 이용하는 고객이 업체에 내야 하는 돈)는 시급으로 1만3940원입니다. 여기서 인건비와 업체가 부담해야 할 교육비,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위해 고용한 통역사 고용 비용 등 각종 운영비를 포함하면 사실상 업체엔 이윤이 남지 않습니다. 때문에 돌봄업체로선 본사업 전환이 중요했습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기존 100명에서 1200명으로 늘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져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겁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A업체가 사업 계속 추진 여부를 문의하자 고용부 관계자들은 올해 상반기 중 본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이용료를 낮추는 방안도 협의하겠다고도 했습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사는 고소득층만 이용하는 서비스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런 비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도 했다는 겁니다. 고용부 관계자들의 말을 믿은 A업체는 결국 사업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돌렸습니다.
김민석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25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시범사업이 연장되고 두 달이 갓 지난 시점인 5월 고용부는 공식적으로 본사업 전환 가능성이 불투명하다고 밝혔습니다. 김민석 고용부 차관은 이달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 본사업 추진 여부를 묻는 질의에 "솔직히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저희도 열심히 노력했고 잘 관리했는데, 당초부터 우리 제도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고 발언한 겁니다.
김 차관은 이어 "국내 (가사관리사)분들을 이용하려면 300만원은 줘야 하는데, 대안이 없어서 (가사관리사)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자는 의도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했다"면서도 "(이용료를) 지불하는 사람 입장에서 금액이 올라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쉽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김 차관의 발언에 돌봄업체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입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맡고 있는 업체들은 김 차관의 공개 발언 이튿날인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 정책에 따라 손실을 감수하며 (사업을) 성실히 수행한 스타트업에게 본사업 중단 가능성을 통보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고용부와 서울시는 저출생 대책을 맡는 여성가족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가정이 더 저렴하게 가사관리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본사업 전환을 위한 협의에 진척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입장에서는 이용료를 저렴하게, 이용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데 인력을 제때 공급해야 한다는 정책적 방향은 같이 가고 있다"며 "현재까지도 그 방향으로 계속 논의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고 보지만 비용 부담 문제 해결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본사업은 비용 부분에서 대안을 마련하는 게 필요해서 우선 시범사업 연장을 추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업체에) 본사업 추진을 확정해서 이야기한 적은 없고, '검토 협의 중'이라는 상황을 공유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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