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진하 기자]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부터 윤석열씨의 파면에 이르기까지 '불면의 밤'이 지속됐던 순간마다 '오월정신'이 빛을 발했습니다. 1980년 전국으로 확대된 비상계엄 조치에 저항한 광주의 정신은 45년을 지나 '친위 쿠데타'를 막아내는 밑거름이 된 것인데요.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속 구절처럼 '죽은 자가 산 자를 돕고 있는 것'이란 평가도 나옵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지난해 12월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늦은 밤 맨몸으로 무장 계엄군 맞선 시민들
윤석열씨가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29분에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그 후 1시간 만에 무장한 계엄군들은 '일체 정치 활동을 금한다'는 포고령에 따라 국회를 에워쌌습니다. 당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과거의 광주를 떠올리며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지키고자 맨몸으로 국회를 향했습니다.
시민들은 무기로 무장한 계엄군과 국회로 향하던 장갑차도 막아섰습니다. 그로 인해 국회의원과 관계자들은 경찰이 막은 국회에 입할 수 있게 됐고, 결국 계엄 해제 의결을 이뤘습니다. 무장한 계엄군 앞에 시민들은 비폭력적으로 위헌·위법에 맞서 민주 헌정을 지켜낸 것입니다.
국회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4시간 만에 계엄 해제를 가결했고, 이후에도 시민들은 연일 전국 각 도시에 모여 위헌적 계엄에 대한 규탄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헌법기관을 무력화하려 했던 윤씨를 탄핵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어 헌정사 최초 현직 대통령의 내란죄 체포·구속까지 이뤄졌습니다. 과거 부당함에 맞선 촛불은 각양각색의 응원봉으로 이어졌고, 곳곳에선 '선결제'란 나눔과 연대의 문화를 만들며 과거 정신이 재현됐습니다.
전국 비상계엄서 광주로…2만 병력 투입
오늘날의 현상은 45년 전 광주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새벽 0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살 후 내려진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됐는데요. 신군부는 즉시 전국 92개 대학에 계엄군을 투입하고 국회와 교도소, 언론사 등 109곳에 계엄군과 전차, 장갑차 등을 배치했습니다.
동시에 '계엄포고령 제10호'도 발령했는데요. 모든 정치활동 중지, 집회 및 시위 금지, 대학 휴교, 언론·출판·보도·방송 사전 검열, 파업 및 유언비어 유포 금지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당시 비상계엄은 전국을 대상으로 했지만, 신군부는 실제 광주를 타깃으로 잡았습니다. 광주에서 계엄 철폐를 외치며 농성을 벌인 대학생과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시위 진압에 특화된 공수부대를 광주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18일 아침. 학생들은 전남대 교문 앞에 계엄을 막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러자 교문을 지키던 공수부대원들이 진압봉을 휘두르며 진압에 나섰습니다. 이후에는 광주 동구 금남로에 모인 시민까지 진압에 나섰고, 이들은 이른바 '화려한 휴가'란 진압 작전으로 시민들을 진압했습니다. 그렇게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하루에 1개 부대씩 파견하면서 광주 주둔 병력과 계엄군까지 합쳐 총 2만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일부 진영과 정치인들은 여전히 '광주사태'란 표현으로 그때를 왜곡하고 있다. 이밖에도 5·18 유공자들이 '가짜'란 주장과 '연금혜택'을 받고 있다는 등의 허위정보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포하고 있다. 사진은 5·18 기념관의 모습. (사진=뉴시스)
극우 세력의 '역사왜곡'…끝나지 않은 내란
광주의 많은 시민들이 희생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아직도 왜곡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진영과 정치인들은 여전히 '광주 사태'란 표현으로 그때를 왜곡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부 누리꾼들은 5·18 유공자들이 '가짜'란 주장과 '연금 혜택'을 받고 있다는 등의 허위정보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포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2021년 1월에 시행된 '5·18 특별법'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기만 해도 징역 5년 이하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데요. 실제 같은 해 12월 "광주민주화운동은 폭동" "북한군의 소행"이란 게시물을 올린 자들이 해당 법에 따라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또 같은 맥락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5·18 왜곡 처벌법'에 근거해 온라인 콘텐츠를 차단 및 삭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역사왜곡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광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노태우의 비자금 문제까지 여전히 논란은 끊이지 않습니다. 이들이 부정 축적한 자산을 당사자 사망 후에도 몰수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일부 의원이 발의했으나, 여전히 국회 표류 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오는 6·3 선거를 앞두고 대선주자들이 '개헌'과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밝혀,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내란이 종식될 수 있을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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