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최근 SK하이닉스와 크게 신경전을 벌인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로부터 열압착(TC) 본더를 신규 수주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이른바 ‘공급처 다변화 전략’으로 한화세미텍과 거래를 트자, SK하이닉스와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한미반도체가 유지보수 유료화 전환과 제품가격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양사의 사이가 멀어진 점을 보면, 이번 수주가 이변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미 철수한 한미 측 유지보수 인력의 복귀가 수주의 조건으로 담겼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한미와 소송전을 벌이는 한화까지 함께 발주를 받아 이들의 불편한 삼각 관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천 서구에 위치한 한미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한미반도체)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용 TC본더 신규 발주에 주목해 온 업계는, 지난 16일 한화세미텍과 한미반도체가 나란히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을 때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 사이에 갈등이 비춰 의외라는 분위기가 적잖았습니다.
한미반도체의 수주액은 부가가치세(VAT)를 포함해 428억원 이고, 한화세미텍은 부가가치세가 제외된 385억원입니다. 부가가치세를 고려하면 양사의 수주액은 비슷합니다. 두 회사의 TC본더 공급량은 각각 10대 안팎으로 추정됩니다.
당초 SK하이닉스는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8년 동안 한미 측으로부터 TC본더를 독점으로 공급받아오다, 지난 3월 두 차례에 걸쳐 한화세미텍으로부터 TC 본더 15대를 총 420억원에 납품받는다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공급처 다변화가 이유입니다.
이에 반발한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의 HBM 생산 라인에 상주하던 무료 유지보수 인력 50~60명을 철수하는 한편, TC본더 납품가의 25%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업계에선 양사의 우호적 협력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그사이 SK하이닉스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한화 측을 두고 한미가 공세와 한화 측의 반격이 번갈아 진행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습니다. 이와중에 한미가 새로운 수주 계약을 따낸 것을 두고, 업계에선 당장 HBM 납품이 시급한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엔지니어 복귀라는 조건을 걸어 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와의 신규 계약에서 빠져나갔던 유지보수 인력을 복귀시킨다는 조건을 걸었다는 얘기가 있다”며 “한미반도체도 현재 인원의 복귀 결정에 대해 논의, 검토하고 있는 단계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는 일단 계약상 조건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에도 함께 발주를 하면서 공급처 다변화 전략이 유지된 탓에 한미와 SK하이닉스의 근본적 관계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아울러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과 시장 경쟁을 넘어 법적 공방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서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12월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기술 유출 및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한화세미텍도 지난달 한미반도체 임원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며 맞불을 놓은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양사의 갈등은 TC본더 외 장외 갈등으로 확전되고 있습니다. 한미반도체는 아워홈과의 급식 계약을 기존 12월에서 오는 6월로 조기 종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급식 업체인 아워홈은 지난 15일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지분 인수를 위한 거래 대금 지급을 완료하면서 한화그룹으로 편입됐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거래처 중 한화세미텍이 늘어나면서 기존 독점 공급 구조의 상황이 바뀌었다”며 “세 회사의 어색하고 껄끄러운 삼각 관계가 당분간은 이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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