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지난 3월8일 '내란 수괴' 혐의로 구속됐던 윤석열씨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서울구치소를 나섰습니다. 구치소를 천천히 걸어 나오던 윤씨는 정문 앞에서 빼곡히 진을 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주먹을 한껏 쥐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내란 수괴가 어떻게 석방될 수 있었을까요. 전날인 7일 법원이 윤씨의 구속취소 청구를 인용한 데 이어 대검찰청이 법원의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를 포기한 탓입니다. 국민이 숨죽여 지켜보던, 윤씨 체포까지의 지난한 과정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겁니다.
윤석열정부는 검찰공화국으로 불렸습니다. 검찰총장을 역임했던 대통령은 검찰 출신들을 요직에 중용했습니다. 정권의 호위무사가 된 검찰은 윤씨 부부의 의혹들은 비호하고, 정적과 시민사회 세력엔 칼날을 들이댔습니다. 때문에 검찰공화국에서 불법 비상계엄이 발생했다는 점에선 검찰도 내란 공범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실제로 검찰이 계엄 수사엔 '공정성' 시비가 제기됐습니다. 검찰은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주요 수사 고비마다 석연치 않은 결정으로 문제를 꼬이게 했다는 지적을 받는 겁니다. 윤씨가 계엄을 전후로 검찰 고위 인사들과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까지 확인, 윤씨와 검찰의 조직적 유착 의혹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석방된 윤석열씨가 지난 3월8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15일 윤씨의 휴대전화 통신 내역을 확보, 검찰에 넘겼습니다. 경찰이 확보한 통화 내역에 따르면, 윤씨는 계엄 이튿날인 지난해 12월4일 김주현 민정수석,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통화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엔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김주현 수석, 이상민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이 회동, 계엄 이후 상황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는 12월6일엔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도 10분간 통화했습니다. 한 전 총장은 전·현직 검사들의 친목 단체인 검찰동우회 회장입니다. 검찰동우회는 앞서 2월 윤씨 구속취소 청원서를 회원들에게 돌렸으며, 윤씨가 석방된 뒤엔 "회원들 도움과 협조 덕분"이라는 취지로 회장 명의 문자메시지도 보낸 곳입니다.
윤씨는 12월15일엔 박성재 장관도 통화했습니다. 이날은 국회에서 윤씨의 탄핵소추안이 가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이튿날입니다. 또 내란 사태를 수사하던 검찰이 윤씨에게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지정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윤씨와 박 장관의 통화가 끝나고, 약 2시간 뒤 검찰은 "윤씨가 불출석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12월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취재진들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의 조사 및 긴급체포 상황을 살피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12·3 계엄을 수사하는 과정에선 수사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무리수를 두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우선 검찰은 지난해 12월6일 박세현 서울고검장을 본부장으로 한 비상계엄 특수본을 꾸렸습니다. 이어 8일 새벽엔 검찰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긴급 체포했습니다. 그런데 애초 김 전 장관에 대한 신병 확보 시도는 경찰이 먼저 한 일이었습니다. 경찰은 6일 김 전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 7일 법원으로부터 발부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선수를 친 겁니다. 특히 앞서 6일 심우정 검찰총장은 김 전 장관의 비화폰 번호를 구했고, 이진동 대검 차장검사는 8일 김 전 장관과 비화폰으로 통화를 했습니다.
또 경찰은 12월7일 밤 검찰에 국군방첩사령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이를 불허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튿날인 8일 검찰은 군검사들과 함께 군사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방첩사를 압수수색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번번이 기각, 수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한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검찰은 윤씨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고 비화폰 기록 삭제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 김성훈 대통령 경호차장에 대해 경찰이 세 차례(1월18일, 24일, 2월13일) 신청한 영장을 거푸 반려했습니다. 경찰이 결국 서울고검 영장심의위원회에 구속영장심의를 신청하고, 4차 영장을 신청하자 검찰은 그제야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지난 3월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지휘부 회의를 열고 윤석열씨 석방에 대해 즉시항고 여부를 논의했다. (사진=뉴시스)
계엄 수사에서 정치 검찰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건 윤씨 구속취소에 대해 즉시항고를 포기한 일입니다. 지난 3월7일 법원이 윤씨의 구속취소 청구를 받아들이자 검찰은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에 수긍하기 어렵다"면서도 법원 결정에 대응하는 즉시항고를 포기하고 석방을 지휘했습니다. 사실상 검찰이 그간 윤씨를 서울구치소에서 '불법 감금' 했다는 것을 자인한 꼴이 된 겁니다.
윤씨의 석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민의 반발, 검찰 수뇌부 판단에 대한 내부 성토가 이어졌고, 천대엽 법원행정처장까지 3월12일 "윤씨 구속취소는 검찰이 즉시항고를 통해 상급심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검찰은 즉시항고 포기 입장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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