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신한은행이 직원 복장 가이드라인을 하달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은행에서는 직장 문화 개선을 위한 사내 조직의 제안일 뿐이라며 강제성이 없다고 해명하지만, 내부 직원들은 따라야 하는 지침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노사 협의로 도입한 복장 자율제가 6년여 만에 사실상 폐지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신한답게 입어라" 매뉴얼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이 최근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신한다움룩' 가이드라인을 올리면서 복장 규제에 나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남자와 여자 직원 모델이 각각 무채색 정장과 원피스를 입은 이미지 예시를 보여주는데요. '청바지, 운동화 조합은 신뢰감을 주기엔 가볍게 보인다'거나 '셔츠와 자켓, 구두까지 깔끔함의 정석'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해당 게시물은 신한은행 입행 3~4년차 직원들로 구성된 사내 조직 '영포스'에서 올린 것입니다. 영포스는 경영과 전략, 문화 등 조직 현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조직입니다. 그러나 신한은행 한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로 이뤄진 영포스가 윗사람과 교감 없이 단독으로 이런 가이드라인을 HR(인사) 게시판에 올렸을 리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직원들로부터 '매우 불만족' 반응이 이어지자 공감 표시만 할 수 있는 게시판으로 가이드라인이 담긴 게시물을 옮겼습니다. 새로 옮긴 게시판에는 실명으로만 댓글을 달 수 있어 게시물에 찬성하는 동조성 댓글이나 공감 피드팩만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임원들이 많이 있는 본점 근무 특성상 복장이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운동화나 슬리퍼를 착용한 것이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눈에 띄어 복장 관련 지적이 있긴 했다"고 했습니다. IT나 보안 부문 등에서 채용한 외부 인력들이 많다 보니 라운드 티셔츠나 반바지, 운동화 착용이 자주 목격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앞서 신한은행은 노사 협의를 통해 지난 2019년 6월부터 유니폼을 폐지하고 복장 자율화를 시행한 바 있습니다. 대리급 이하 여직원들이 착용해온 유니폼을 먼저 폐지하고 이후 남성 직원들에게도 자율복 착용을 허용했습니다. 당시 신한금융지주(
신한지주(055550))가 신한은행 등 계열사보다 먼저 복장 자율화를 시행해 은행권 선도 사례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신한은행이 사내 게시판에 직원 복장 착용 관련 가이드라인을 게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20년 복장 자율제를 시행한 바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모습. (사진=뉴시스)
신한은행 노조에서는 은행의 복장 규제 움직임에 강력 반발하고 있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근무 복장은 단순히 근무할 때 입는 옷이 아니라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는 상징과 같은 것"이라며 "경영진 입맛에 맞게 근무복을 규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노사 협의 없이 행동에 옮겨버리는 행태가 가장 큰 문제"라고 했습니다.
은행 "조직문화 개선 제안일 뿐"
신한은행에서는 강제성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복장 착용에 대해 눈치보는 분위기는 내부에서 확산하고 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지주에서는 정장을 입으라고 부서 차원의 지침이 내려왔다고 한다"며 "복장 자율제가 사실상 폐지된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임직원 창의성과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위한다면서 자율 복장을 시행했다가 되돌리면서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유니폼(근무복)은 과거 은행원의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업계의 트렌드가 복장 자율화로 굳어지는 추세가 됐습니다. 직급이 낮은 여자 직원들에게만 유니폼 착용을 요구하면서 성차별 또는 직급 차별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기업들의 복장 자율화 움직임은 전력난이 있었던 2012~2013년을 기점으로 도입됐다가 코로나19 영향으로 재택 근무나 대면 업무가 급증하면서 급증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은행권에서도 복장 자율제를 줄줄이 도입했습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뿐만 아니라 기업은행 등 일부 국책은행과 지방은행도 복장 자율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복장을 자유롭게 입을 수 있도록 하면서도 고객 응대에 적합한 복장,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단정한 복장 착용 등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임원들이 많이 있는 본점보다 영업점이 복장 착용 관련 규제가 덜 까다롭다"면서도 "고객 대면 서비스다보니 영업점에서도 청바지, 라운드티셔츠 등 지나친 캐주얼 복장은 피해달라는 당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매일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보다 유니폼을 입는 게 더 낫다는 의견도 상당하긴 하다"고 했습니다.
은행 유니폼은 과거 은행권의 깨끗함을 상징하기도 했다. 직원 개개인의 개성이 중시되면서 주요 시중은행들은 복장 자율제를 시행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은행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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