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모든 화제를 빨아들이는 가운데서도 주목을 받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탄핵당한 전임 대통령의 부인이 통일교 간부로부터 선물 명목으로 샤넬 가방 2개를 받은 것입니다. 자세한 사연은 수사당국에서 조사해 밝히겠지만 그 금액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선물 받은 당시 샤넬 가방 하나는 802만원이고 다른 하나는 1271만원으로 총 2000만원이 넘습니다. 샤넬이 매년 가격을 인상해 지금은 2770만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핸드백 하나가 1000만원 이상이니 대단한 금액입니다. 그 정도면 물건을 넣어 다니는 핸드백이라기보다 집안에 모셔두는 귀중품에 속합니다.
명품백 가격이 왜 그리 비쌀까요? 또 명품백이라면 왜 사양하지 않고 다 받을까요? 샤넬 백을 받은 분은 비슷한 시점에 어느 목사에게서 디올 백을 받은 것이 공개되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권력 있는 높은 자리에서 고가 선물을 받으면 뇌물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주는 대로 명품백을 받았으니 얼마나 명품백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명품백을 많은 사람이 사랑합니다. 명품백 한두 개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결혼 혼수품이나 기념일 선물로도 명품백이 빠지지 않습니다.
명품백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싸기만 해서가 아닙니다. 돈만 있다고 쉽게 살 수 없습니다. 명품백 하나를 구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번호표 받아 매장 앞에서 줄 서 기다리는 것은 기본입니다. 늦게 가면 원하는 상품을 살 수 없으니 새벽부터 백화점 앞에서 죽치며 기다렸다 개점하면 매장으로 달리기하듯이 뛰어가야 합니다. 외국 언론에서 한국의 희한한 광경이라며 취재하는 ‘백화점 오픈런’입니다.
진짜 귀한 명품백은 한정판으로 내놔 오픈런 경쟁으로도 살 수가 없습니다. 이번 선물 사건에 관련된 샤넬 가방 중 비싼 것은 인기가 많아 한국에서는 1인당 연간 1점만 구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샤넬보다 더 귀한 에르메스 버킨백이나 켈리백은 주문하고 1~2년 기다려야 살 수 있습니다. 버킨백 한 개가 평균 2000만원 이상이고 악어나 타조 가죽이면 5000만원 가까이 됩니다. 에르메스 매장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한 이력이 있어야 자격이 주어집니다. 구매 자격을 갖추고도 원하는 모델을 주문하면 언제 받을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희소성이 최상급인 에르메스 백은 리셀가가 매장가보다 2배가량 높습니다. 그러니 명품 가격이 매년 올라가고,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수요가 늘어납니다. 오죽하면 명품을 사서 다시 파는 재테크가 유행하겠습니까. 앞으로 계속 가격이 오를 것이니 지금 사 두면 돈이 된다는 겁니다. 명품에 꽂히는 합리적 이유가 됩니다.
명품은 원래 외국에서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디자이너 브랜드로 출발했습니다. 원어로는 사치품(Luxury Product)인데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며 명품이란 말로 대체했습니다. 정말 이름을 잘 지었습니다. 명품이라 하면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든 작품처럼 들립니다.
명품의 가치는 제품의 기능에 있지 않습니다. 명품의 생산원가는 얼마 안 됩니다. 명품과 유사한 품질의 가품(짝퉁)은 몇십만원에 살 수 있습니다. 가품과 진품의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브랜드가 달린 진품은 몇십 배로 비싸게 팔립니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와 이미지를 사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명품 소비가 유행하게 된 것은 한국적 문화에 기인합니다. 개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선진국에서는 일반 소비자들이 명품에 열광하지 않습니다. 부자라 해도 명품을 사는 사치 행위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독특합니다. 부유층은 자신의 부와 신분을 명품으로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중산층은 체면 때문에 남들만큼 산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명품을 구매합니다. 서민층은 모방심리나 보상심리로 명품을 소비합니다. 남을 의식하고 남이 하면 따라 해야 하는 집단적 문화가 명품의 대중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명품 소비 1위 국가로 올라섰습니다.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는 2022년 기준 325달러로 미국(280달러) 중국(55달러)을 크게 앞섭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소비자가 명품 옷과 가방에 지출한 금액은 168억달러(약 21조원)에 달합니다.
명품을 한두 개 사는 정도는 문제가 안 됩니다. 하지만 명품에 목을 매며 모든 것을 다 명품으로 채우려는 욕망은 병입니다. 명품족은 핸드백에서 구두, 시계, 목걸이, 자동차 등을 명품 브랜드로 감싸야 만족하고 충만감을 느낍니다. 아파트도 명품 브랜드화하며 강남 아파트 가격 폭등을 부추깁니다.
한국형 일류병이 명품으로 전이되며 명품 중독의 병폐가 심각합니다. 대통령 부인이 명품을 선물 받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과연 본인은 명품 욕망에서 자유로운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만일 누가 샤넬 백이나 디올 백 아니 롤렉스 시계나 포르쉐 자동차를 선물해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명품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의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명품 욕심이 잉태하여 부정부패의 죄를 짓게 하는 병리 현상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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