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이재명정부가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겠다며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차주의 상환능력 심사를 강화하는 규제에 이어 대출 공급자인 은행을 옥죄는 자본규제를 도입하는 것인데요.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특히 규제에 규제를 더하는 수요 억제 일변도의 정책을 반복했다가 집값 잡기에 실패한 문재인정부의 패단을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옵니다.
주담대 규제로 수요 억제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정부의 인수위원회격인 국정기획위원회는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위해 금융권에 새 규제를 진행할 뜻을 밝혔습니다. 기존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수요자 입장의 수요 억제에서 더 나아가 공급자인 은행 자체의 대출 여력을 축소하겠다는 것입니다.
국정기획위가 내놓은 규제는 △금융사에 완충자본을 부과하는 자본 규제 △주담대의 규제 비용 인상입니다. 부문별 경기대응완충자본 또는 부문별 시스템리스크 완충자본 도입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부문별 경기대응완충자본은 주담대가 급증할 때 한시적으로 추가 자본을 쌓게 하고, 부문별 시스템리스크완충자본은 부동산 시장 전체를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간주해 상시적으로 자본을 더 보유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주담대 규제 비용 인상의 경우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할 때 위험가중치 하한을 상향조정하는 것입니다. 국내 은행의 주담대 평균 위험 가중치 15%를 홍콩이나 스웨덴의 경우처럼 위험가중치 하한을 25%로 상향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자본 규제가 강화되면 대출 등 위험가중자산 규모를 조정할 수밖에 없어 대출 총량이 사실상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은 차주에 전과 동일한 금액의 주담대를 내주더라도 더 많은 자기자본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험가중자산이 늘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은행은 대출을 줄이거나 자본을 확충해야 합니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이 같은 규제가 시행되면 은행들이 주담대 등 개인대출 심사를 더 복잡하게 하고, 총량 역시 쉽게 늘리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투기 목적이 아니라 실제 주택을 구입하려는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이 금지되거나 극단적인 경우 모든 대출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출금리도 올라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시장금리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이 커지면서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주담대 등 대출에 대한 자본규제가 강화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자본 비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더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주담대는 담보가 있는 안전한 대출인데 이를 새로운 규제 도입으로 제한하면 실수요자 공급이 줄어들 수 있고, 대신 기업대출을 늘리면 그만큼 리스크가 확대돼 대출금리가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주택담보대출 수요 억제에 이어 대출공급자인 은행에 대해서도 자본규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의 모습. (사진=뉴시스)
"실패한 과거 정책 답습 우려"
금융당국은 대출 증가세가 가라앉지 않을 경우 더 강력한 조치를 내놓는다는 방침입니다. 전세대출과 정책모기지 대출에도 DSR 적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들 대출은 실수요 보호 차원에서 DSR 예외로 분류돼 왔지만 정부는 전세대출이 갭투자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DSR은 개인의 연 소득 대비 연간 모든 원리금 상환액이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규제입니다. 만약 전세대출까지 포함된다면 대출 여력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의 대출 자체가 거절될 수 있습니다. 오는 7월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과 함께 수도권에만 더 높은 가산금리를 부여하는 방안과 보증기관의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기존 90%에서 수도권만 80% 또는 70% 수준으로 강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됩니다.
정부가 이 같은 방안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기존 대출 수요 규제의 한계 인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출 규제로 수요를 막으려고 했지만 집값 상승세를 꺾는 데 한계가 있었고, 보유세 인상과 같은 세금 조정은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은 당위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투자수단으로 부동산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으며, 억지로 막으려다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 정부에서 이미 실패한 수요 억제 대책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서울 주택가격 급등세를 잡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선택지를 없앨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들은 자가 마련을 위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데요. 대출 한도가 줄어들면 그만큼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주택 구매 결정 자체가 미뤄질 수 있습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주택담보대출 취급 비중이 높은 은행에 자본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앞에 주택담보대출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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