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우리 시대 '투명인간'
87년 체제 이후에도…사회적 약자 앞에 멈춘 '민주주의'
2025-06-25 06:00:00 2025-06-25 06:00:00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노동자 민주노총 공동파업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1982년에 태어났다. 이름은 김지영(가명·여성). 아침 밥상머리 서열은 아빠, 아들, 할머니. 그다음이 어머니와 나였다.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유치원에 들어갔다. 호주승계 순서(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를 담은 동요 <개구리>를 읊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1989년. 반장 선거는 남자부터. 자리도 왼쪽은 남자·오른쪽은 여자. 1995년 중학교에 입학했다. 귀밑 3cm에 양말접기는 기본. 대학 입학 후에도 사회적 제약은 적지 않았다. 취업 이후 결혼과 동시에 맞닥뜨린 '전업주부냐, 워킹맘이냐'의 기로. 미·중 양자택일 압박보다 강했다. 그렇게 반세기를 보냈다. 
 
김지영부터 이철수까지 
 
여전했다. 82년생 김지영의 고단한 삶은. 이재명정부가 출범해도 마찬가지. 특히 6·3 대선은 내란 종식이란 미명하에 노동·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어젠다가 종적을 감춘 선거 아닌가. 어디, 우리 시대 김지영뿐이랴. 
 
54년생 김순자(가명·여성)씨는 해방둥이(1945년)와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4년) 사이에 태어났다. 특정되는 세대 구분도 없다. 투명 인간 취급받기 일쑤.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했다. 중학교 입학은 언감생심. 14살의 사춘기 소녀는 새벽안개를 헤치고 첫차에 몸을 실었다. 
 
구로공단으로 향했다. 밤새워 일했다. 그에게 붙여진 이름은 공순이. 시쳇말로 뼈를 갈아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이후 결혼했다. 하지만 남존여비 관념에 평생 갇혀 살았다. 행복지수는 제로. 삶의 질을 따지는 것도 사치. 칠순이 넘은 오늘도 6411번 버스를 타고 서울 강남의 어느 빌딩으로 출근, 청소를 한다. 
 
차별과 배제는 비단 젠더에 국한하지 않는다. 김순자의 동네 친구 이철수(가명·남성)의 삶도 마찬가지. 초등학교도 못 마쳤다. 머슴살이도 했다. 막노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장애를 입었다. 결혼 이후 삶은 더 가혹했다. 평생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았다. 분초를 다투며 생계를 꾸렸다. 여행 한번 못 갔다. 입에 풀칠만 해도 다행. 남존여비보다 강한 건 자본. 관념 위 돈. 세상의 법칙은 '만사돈통'(돈이면 만사 해결). 그의 삶에도 쉼은 없었다. 
 
'소년공 대통령' 이재명 
 
"바보야, 문제는 불평등이야." 54년생 이철수부터 82년생 김지영까지, 우리 시대 투명 인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불평등. 해방둥이 직후 태어난 이철수는 경제적 불평등에, 82년생 김지영은 사회적 불평등에 각각 노출됐다. 그게 차별(이철수)이든 혐오(김지영)든, 핵심은 '배제'다. 차별·혐오·배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만악의 근원. 
 
속살은 타자에 대한 폭력. 특히 타자가 사회적 약자일 때 그 폭력의 인화성은 상상을 초월. 자본이든 젠더든 한국 사회에서 집단화된 서열주의 후광은 눈부시다 못해 찬란하다. 감히 누가 '기득권 동맹'에 도전하랴. 
 
그사이 1%를 제외한 다수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대한민국 가장 낮은 곳에서 노동자들의 목숨 건 생존투쟁이 진행 중이다.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 내 한전KPS 태안화력사업소 기계공작실에서 숨진 노동자 김충현씨. 일명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에도 '위험의 외주화'는 막지 못했다. 반복되는 SPC와 쿠팡 노동자의 사망사고. 한화오션 하청노동자의 목숨 건 고공농성은 97일 만에야 끝났다. 534일(24일 기준)째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박정혜 해고노동자도 우리 사회의 투명 인간.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인의 이동 권리는 여전히 높은 벽에 막혔다. 파주 용주골에선 성노동자의 터전이 파괴당했다. 동덕여대에선 젠더 민주주의가 뿌리째 뽑혔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어떤가. 87년 체제 이후에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사회적 약자 앞에 늘 멈췄다. 509년 전 토머스 모어는 하루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줄이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라고 했다. 소년공 대통령이 집권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명확. 그것 외엔 희망이 없기 때문. 이를 외면한다면, 그 역시 실패한 대통령. 벼랑 끝에 선 우리는 정말 절박하다. 역대 대통령처럼 기득권 동맹에 굴복하지 않기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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