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평 기자] 유병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이 취임 2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유 사장은 지난 23일 국토교통부에 자진사퇴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이는 20일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HUG가 2년 연속 D(미흡) 등급을 받으며 기관장 해임 건의가 임박한 상황에서 스스로 거취를 정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당초 유 사장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였습니다.
유병태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이 2023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교통부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023년 6월 취임한 유 사장은 임명 당시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윤석열씨와 서울대 법대 동문이며, 임명 당시 국토부 장관이던 원희룡 장관과는 82학번 동기입니다. HUG 사장은 국토교통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유 사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한국장기신용은행과 KB부동산신탁을 거쳐 코람코자산신탁 이사를 지낸 뒤 HUG 사장으로 임명됐습니다. 부동산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공공기관에 관련 경험이 전무한 외부 인사가 내정되면서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과제 산적한 가운데 재무건전성 '흔들'
HUG는 2015년 주택도시기금법에 따라 설립된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입니다. 주택 관련 보증업무와 정책 사업 수행하며, 올해 기준 103조3915억원 규모의 주택도시기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유 사장이 임명된 2023년은 전세사기, 역전세, 분양가 인상 등으로 인해 HUG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시기였습니다. 전세사기 급증과 주택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HUG의 재무적 부담은 급격히 커졌는데요. 2021년까지 494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HUG는 2022년 2428억원의 손실로 돌아선 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입니다. 2023년에는 3조9962억원, 2024년에는 2조192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정부는 보증여력이 줄어든 HUG에 대해 지난달 28일 5650억원 규모의 현물출자를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HUG의 전세보증금 대위변제액도 전세사기 여파로 급증했습니다. HUG에 따르면 2021년 5041억원이던 대위변제액은 전세사기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2022년 9241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유 사장이 취임한 2023년에는 3조5545억원으로 급증했으며, 지난해에는 3조9948억원으로 뛰었습니다. 올해는 5월 기준 1조1019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2월 대구 중구 동성로에 설치된 대구 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추모 분향소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 대책위원회, 전세사기 대구 피해자 모임 관계자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부실 감정평가·악성임대인 관리 부실 비판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부실 감정평가와 악성임대인 관리 부실 등 HUG의 방만 경영이 집중적으로 지적됐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쓰여야 할 HUG의 재정과 권한이 악성 임대인과 일부 기업에 악용되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당시 박용갑 민주당 의원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감정평가로 인한 사고 비율이 42.8%였으며, 2024년 8월 말 기준으로는 73.4%에 달했다"며 "HUG가 감정평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부풀리기, 가짜 서류, 부실 감정평가는 HUG가 보증할 때 임차인들이 피해를 보게 만든다"라며 철저한 관리를 촉구했습니다.
윤종군 민주당 의원은 "관리대상인 악성임대인 한 명이 850건의 보증사고로 약 1400억원의 사고를 쳤다"며 "담당 직원의 업무 태만과 도덕적 해이를 넘어서 중개업자와 은행의 결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부영그룹에 쏠린 주택도시기금도 지적됐는데요.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20년간 공공주택 건설업자에게 낮은 이율로 융자된 주택도시기금 약 18조8000억원 중 4조4000억원가량이 부영에 갔다"며 "최근 부영이 임대아파트 분양 전환을 하면서 분양 전환대금을 부풀려 청구했고 이것이 부당이득이라는 대법원판결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맹성규 국토교통위원장은 감사원의 감사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맹 위원장은 "악성임대인에게 보증이 다시 나간 것은 심각한 사항"이라며 "대위변제로 인한 재무건전성 등 전방위적으로 손봐야 하고 종합감사 때까지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국회에서 추가적인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경영부진 속 윤정권 책임론도
유 사장의 사퇴 배경에는 '적자 공룡', '부실 심사' 등 경영 성과 부진과 조직 운영 미흡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HUG의 부진을 유 사장의 책임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전세사기 급증, 이전 정부의 무능함 등 외부 요인과 구조적 문제가 HUG의 재무건전성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도 제기됩니다.
HUG 관계자는 "전세사기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유 사장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안타까운 건 윤석열정부는 사회적·공적 역할에 따른 비계량적 평가보다는 계량 평가에 중점을 두는 정부였다. HUG는 올해 많은 부분을 개선했지만 지난해까지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유 사장이 책임지고 사의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는데요. 그는 "윤정부가 사실상 지난 3년간 주택정책을 방치했다. 국민의 주거복지나 주택 공급, 부동산 시장 등에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면서 "부동산 시장은 나빠지고 건설업도 망해가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정책적, 정무적인 역할을 해야 했지만 윤석열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관장이 제대로 업무를 할 수 있겠느냐"라고 꼬집었습니다.
유 사장의 자진 사퇴로 후임 HUG 사장 인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한 HUG 직원은 "차기 사장은 실무적으로 능력 있고 국토부와 HUG에 대해서 잘 알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김지평 기자 jp@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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