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레오14세 교황은 한반도를 위해 크게 기여할 분이란 느낌이 머릿 속과 마음 속 모두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한국을 방문 중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은 레오14세 교황이 탄생하던 순간을 회상하며 이 같이 말했습니다. 전임 교황인 프란치스코 1세가 끝내 이루지 못한 방북의 꿈을 레오14세가 실현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함께 표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유흥식 추기경은 23일 파주 임진각에서 '평화대담'을 진행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유 추기경은 23일 오전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일대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평화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박정 민주당 의원과 전재명 DMZ평화문화기후센터 대표가 배석한 이 자리에서 유 추기경과 우 의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 긴장 완화 등에 공감대를 형성했는데요. 특히 '실향민 2세'로 알려진 우 의장이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앞에 두고 유 추기경과 평화를 염원하는 모습은 만남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유 추기경은 "남북은 같은 민족이자 동포인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갈라져있는 나라"라고 한반도 분단 현실을 짚었습니다. 이어 "되도록 빨리 한반도 평화를 이뤄 아시아의 평화,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교황의 북한 방문을 포함해 한반도 평화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는데요. 유 추기경은 "인도적 지원을 위해 북한을 네 차례 방문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책임 있는 분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며 "지금도 여러 면에서 북한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입을 열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유흥식 추기경이 23일 파주 임진각에서 두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어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천만 가족이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민족이 형제자매인데 70년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느냐. 그 고통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 북한테 갈테니 나를 초청해라'고 공적으로 말씀하셨다"면서 전임 교황의 방북 추진 배경을 설명했는데요. 끝내 북한엔 가지 못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를 레오 14세에게 했더니 "이런저런 대답없이 빙글빙글 웃었다"고 전했습니다.
유 추기경은 "아무래도 미국 분이시니 첨예한 대립 관계인 북미 사이에 어떤 면에서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미국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면 북한은 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는데요. 그는 "교황청에서 교황님을 모시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기도 뿐 아니라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든지 다 하겠다"고도 약속했습니다.
이에 우 의장은 "교황께서 한반도 평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며 "2027년 세계청년대회(WYD) 참석을 계기로 북한까지 한 번 가주시면 좋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제안이 있었는데, 그 제안이야 말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고 화답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유흥식 추기경이 23일 파주 임진각 장단역 증기기관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전재명 DMZ평화문화기후센터 대표, 김경일 파주시장, 우원식 국회의장, 유흥식 추기경, 박정 민주당 의원. (사진=뉴스토마토)
우 의장은 또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 이후 이어진 여러 차례 합의들이 지금 사실상 무용지물이 돼 있다"면서 "다시 역대 합의 정신을 잘 찾아나서는 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는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는 유 추기경의 발언을 인용해 "평화에는 중립이 없다. 평화는 공동선이다"라며 한반도 평화에 대한 자신의 소신도 함께 전했습니다.
아울러 우 의장은 2010년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북한에 남아있는 누나를 만났던 일을 상기하며 "마지막 이산가족 상봉인 2018년 8월 이후 돌아가신 분만 2만명에 이른다"며 "획기적이고 진취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회가 되면 교황님을 꼭 뵙고 한반도 평화, 남북한 긴장 완화, 이산가족 문제 등을 나누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유흥식 추기경이 23일 파주 임진각 일대를 둘러보고 한반도 평화를 염원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날 우 의장과 유 추기경은 대담에 앞서 평화누리공원 일대를 둘러보며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우 의장이 "누님 두 명이 북에 있다"며 본인을 실향민이라고 소개하자 유 추기경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서 전쟁의 아픔을 나눈 사이임도 확인했는데요.
유 추기경은 남한과 북한의 소녀가 나란히 앉아있는 평화의 소녀상과 민간인 통제선 넘어 임진강 독개다리 끝에 섰을 때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듯한 기도와 축복을 했습니다. 통일염원우체통 앞에 선 두 사람은 각각 '마주 보는 용기에서 평화가 싹틉니다'(우 의장), '다음에는 평양에서 엽서를 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유 추기경)라고 적은 편지를 부쳤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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