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년 만에 미국 땅을 밟게 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했던 '치명적 제재' 대신 정상회담 카드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강경 발언 후 유화적 후퇴' 패턴이 또다시 반복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무엇보다 노벨평화상과 임기 내 종전이라는 상징적 업적을 조기에 확보하려는 정치적 조바심이, 푸틴 대통령을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대 외교 무대에 복귀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번 회담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중재 외교' 성과를 국제사회에 과시할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 테이블에서 정작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배제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양국 간 단독 회담이 아닌 3자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FP 연합뉴스)
'3자 회담' 추진 시사…최후통첩에서 '회담 제안'으로
10일(현지시간)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젤렌스키 두 정상이 한자리에 앉도록 설득하고 있다"며 '3자 회담' 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하면서 종전 협상이 진전되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 입장을 바꾸도록 만들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밴스 부통령은 또 "세 정상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분쟁 종식을 논의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 중"이라며 "양측 모두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하겠지만 두 정상 간 이견을 해소하는 것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양자회담 구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종전 협상의 포맷을 넓힐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푸틴 대통령에게 "전투를 멈추라, 아니면 제재를 감수하라"는 최후통첩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시한이 지나도록 러시아 측의 가시적인 반응이 없자 백악관은 돌연 15일 알래스카에서 미·러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사망선고가 내려졌던 우크라이나 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숨을 불어넣고 있다"면서도 "러시아군 폭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의 진정성에는 의문이 남는다"고 전했습니다.
취임 초 트럼프 대통령은 '24시간 내 전쟁 종식'을 공언했지만, 최근 푸틴 대통령의 '겉으론 협상, 속으론 공격' 전략에 불만을 드러내며 강경 조치에 나섰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취임 후 처음으로 대규모 무기를 지원했고,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에 관세 부과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별대표가 모스크바를 방문한 이후 양국 간 분위기는 급격히 반전됐습니다. 샘 그린 영국 킹스칼리지 교수는 "푸틴 대통령은 압박에 굴복하는 듯한 모습을 피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가 무력화될 경우 '두 번 약해 보이는' 위험을 피했다"며 "결국 양측 모두 체면을 살린 셈"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영토 교환'이 최대 쟁점…우크라이나 배제 논란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의 처리 방식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미 특사에게 동부 도네츠크·루한스크 2개 주를 우크라이나가 영구 양보하고, 도네츠크에서 군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휴전하겠다는 제안을 전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일부는 돌려받고, 일부는 교환할 것"이라며 동부 돈바스를 내주는 대신 자포리자·헤르손 2개 주를 되찾는 '영토 맞교환' 구상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큽니다.
현재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회담에 공식 초대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3자 회담에 열려 있다"면서도 "지금은 푸틴 대통령이 요청한 양자회담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매튜 휘트커 주나토 미국대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결국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릴 것이며,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을 초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성향과 정상 간 담판 선호를 고려할 때 충분한 실무 조율 없이 정치적 성과를 서두르는 '졸속 합의'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이미 미 특사의 협상 카드를 활용해 이번 회담을 강대국 간 거래로 만든 만큼,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맥스 부트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노벨상 수상 집착과 조기 종전에 대한 조바심이 트럼프 대통령의 성급한 결정을 부추겼다"며 "제재 위협으로 확보한 협상 지렛대를 빠르게 소진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15일 열릴 알래스카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외교 복귀 쇼'를 무대로 올려줄지, 아니면 실질적인 종전 합의를 이끌어낼지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회담 결과에 따라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뿐 아니라 미국의 대외정책,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까지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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