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이재명정부 금융당국 투톱 체제가 꾸려지고 있지만 출발부터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이억원 후보자와 지난달 취임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주요 현안을 두고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는데요. 과거 정권에서 반복돼온 금융당국 내부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금리·회계기준 등 이견
4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정부와 여당은 금융위원회를 해체하고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를 부활시키는 정부 조직 개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법안 처리 이후에도 시행령 제정 등 후속 절차가 남아 있어 실제 제도 변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사이 금융업계에서는 당장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의 발언과 행보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억원 후보자와 이찬진 원장의 발언을 보면 앞으로 금융위와 금감원 간 갈등이 걱정됩니다. 제도상 권한 문제부터 신경전이 시작됐습니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금융감독정책, 금융정책은 절대적으로 금융위원장 소관"이라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금감원 지휘권은 금융위에 있다고 못 박은 셈입니다.
이 발언은 향후 감독 권한 배분 문제에서 또 다른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원장은 취임 이후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며 감독·검사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역대 정부에서도 금감원장이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금융사 옥죄기를 강화한 반면, 금융위원장은 금융산업 제도 불확실성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며 제동을 걸어왔습니다.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금리정책을 놓고도 시각차를 보입니다. 이 원장은 은행권과의 첫 상견례 자리에서 은행들이 '이자 장사'에 치중하고 있다고 날을 세운 바 있습니다. 담보와 보증 위주의 손쉬운 영업 관행에서 벗어나 생산적 금융을 확대하라는 취지입니다. 다만 금감원장의 이자장사 지적은 최근 고금리 부담이 서민 가계에 큰 압박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소비자 부담을 줄이는 문제에서 그간 금감원은 적극적 개입론을 취해왔습니다.
강경 모드를 취하고 있는 이 원장에 비해 이 후보자는 신중 모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후보자는 "차주의 금리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시장가격인 금리 산정 관련 사항은 법률로 정하기보다는 대출금리 모범 규준 같은 자율 규제 방식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은행 가산금리 손질을 핵심으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에 힘을 주고 있습니다. 여당은 은행들이 서민 대출을 내주며 가산금리 일부를 차주들에게 떠넘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은행법을 고쳐 각종 비용을 금리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관련법 개정을 9월 정기국회에서 최우선 처리 법안으로 올렸습니다.
보험업권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 차가 확연합니다. 대형 보험사 회계 처리 문제와 관련해 이 후보자는 국회 차원의 입법 논의가 우선이라며 거리를 두는 모습입니다. 반면 이 원장은 국제회계기준(IFRS)에 맞춰 회계 처리 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금융위는 국회로 공을 넘기는 반면 금감원은 현장 감독을 통해 직접 손질하겠다는 태세입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국 내부 갈등 재현되나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과 같이 이견 없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사안도 있습니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융사와 소비자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금융사가 금융당국의 조정안을 무조건 따르도록 강제하는 제도입니다. 이 후보자는 "소액 분쟁 사건에 대한 편면적 구속력 도입 등 예기치 않은 피해 발생에 따른 사후 구제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고, 이 원장도 "법제화 등을 포함해 전반적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관건은 조직 개편의 속도입니다. 금융위와 금감원 간 권한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두 기관이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기획위원회가 마련한 금융당국 조직 개편안의 방향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에 이관하고, 기재부는 재정경제부로 탈바꿈하는 내용입니다. 기존 기재부가 가진 예산 기능은 분리돼 신설된 기획예산처로 옮겨 갈 예정입니다.
금융위의 감독정책 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해 이관하고, 금감원 산하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격상해 금감위 아래에 금감원과 금소원을 두는 방안입니다. 이대로 개편안이 확정될 시 이 후보자가 금감위원장을, 이 원장이 금감원장이나 금소원장을 맡는 방식이 거론됩니다. 일각에선 이찬진 원장이 금감위원장과 금감원장을 겸임하고 이억원 후보자는 제정경제부에서 역할을 하는 방안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 수장들이 금융정책 전반에서 이견을 보이는 기류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요 정책마다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금융정책 방향을 놓고 양 기관장이 충돌하면서 감독 체계 전반의 신뢰도가 흔들린 사례가 반복됐습니다. 이번에도 '불편한 동거'가 반복될 경우 비슷한 양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책과 감독이 액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면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금융시장에 불협화음으로 보이면서 불확실성을 키워왔다"며 "금융소비자 보호와 시장 안정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놓고 당국 기능을 분명히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저축은행 대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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