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정청래 민주당 대표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참모진 누구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 가운데 일부는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 “당이 너무 앞지른다” 등의 표현으로 이재명 대통령 의중을 전달했습니다. 또 일부는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약화될까 우려도 건넵니다. 우상호 정무수석은 당에 대통령 뜻을 가감 없이 전달하며 조율에 열심입니다. 때로는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4선 중진의 경륜과 노련함 뒤로 속이 꽤나 끓는다고 들었습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청래 대표 선출(8월2일) 직후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8월23일)과 한미 정상회담(8월26일)을 앞둔 중차대한 시기임에도 휴가(8월4일~8일)를 떠났고, 이는 갖은 해석을 낳았습니다. 8월12일에서야 정 대표를 만났지만 당대표 경쟁자였던 박찬대 의원도 함께 한 자리였습니다. 8월20일 만찬 역시 신임 지도부가 모두 초대된 자리였습니다. 9월8일에서야 두 사람이 따로 만났지만, 대통령과 여야 당대표 회동 그리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의 단독 면담이 뒤를 이었습니다.
정 대표는 속으로 끓었지만 따질 명분이 없었을 겁니다. 전당대회 승자에 대한 축하와 패자에 대한 위로, 여당 신임 지도부와의 소통이라는 명분 이면에 정 대표와의 단독 만남을 꺼려하는 대통령의 신호가 감지됐습니다. 대통령과의 주례 회동을 바랐던 정 대표로서는 거부 의사로 읽혔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여야 당대표 회동 역시 대통령은 소통과 협치라는 큰 틀의 정치로 다가서면서 정 대표의 대결주의 정치와 선을 그었습니다.
사실상 예견된 마찰이자 갈등이었습니다. 지난 8·2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은 표면적으로 중립을 지켰으나 마음은 박찬대였습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역위원장 대다수가 박찬대 의원을 지원했음에도 정 대표가 손쉽게 이겨버린 것입니다. 집권 100일도 되지 않은 대통령으로서는 타격이었습니다. 사실 정 대표를 너무 쉽게 봤습니다. 정 대표는 대선 기간 호남에 살다시피 하며 텃밭 표심을 일궜습니다. 비명·반명 할 것 없이 표에 도움이 된다면 서슴없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반면 박찬대는 정청래의 프레임에서 허우적대며 차별화에 실패했습니다.
입각을 통한 교통정리도 고려할 수 있었지만 인위적이라는 이유로 배제됐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정 대표는 당대표 취임 이후 자신의 색깔을 마음껏 드러냈습니다. 당의 투톱이자 선출직인 원내대표도 움츠러들게 만들었습니다. 검찰 개혁안은 당정 주도권 다툼의 한 부분이었을 뿐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오랜 친구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외톨이가 됐습니다. 특히 지난 8일 대통령이 “여당이 더 많이 양보하라”며 협치를 주문했음에도, 정 대표는 다음날 보란 듯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을 꺼내들며 국민의힘을 해산 대상으로 압박했습니다. 일종의 마이웨이 선언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민주당의 정청래 대표, 김병기 원내대표 등 신임 지도부와 만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뉴시스 사진)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강성 당원 지지를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건건마다 물러섬 없이 색깔을 드러낼 것이고, 이는 대통령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장동혁 체제의 국민의힘은 정 대표 입장에서 천군만마입니다. 강하게 밀어붙여도 민심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는 민주당 잔치가 될 것입니다. 이미 수도권은 민주당 안방이 돼 버렸고, 중도층은 물론 보수층마저 윤석열과 절연 못하는 국민의힘에 등을 돌린 상황입니다. 정 대표는 지방선거 압승 기세를 몰아 총선 승리를 목표로 당대표 연임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교롭게도 당대표 연임의 허들은 대통령이 치워줬습니다. 정청래 대항마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차기 총선 공천을 눈치 봐야 하는 의원들 입장에선 줄을 갈아타야 할지도 모릅니다. 벌써부터 눈치전이 요란합니다.
집권 초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갈등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결국 최종 피해는 대통령의 몫입니다. 담아두는 성격의 이 대통령이 계속해서 물러서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여당의 뒷받침 없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정청래 대표와의 관계 설정 또한 대통령에게 달렸습니다. 신경전을 넘어 주도권 다툼으로 비화된 물밑싸움의 결말도 대통령 판단이 좌우할 것입니다. 정치에서 권력투쟁은 필연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중심에 오직 ‘국민’이 있길 바랄 뿐입니다.
편집국장 김기성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