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를 보인 데 이어 이번엔 통화스와프 없이 대미 투자 시 '제2의 금융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한·미 협상을 이유로 미국에 항의성 발언을 자제해온 것과는 상반된 행보인데요. 대미 관세 협상의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으로, 향후 협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메시지로 풀이됩니다. 이 선을 넘어가면 미국의 그 어떤 조건도 수용할 수 없다는 이 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로 꼽힙니다. 한편으론 국내 비판 여론을 감안해 국익 최우선 원칙론을 앞세워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도 읽힙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미 요구 수용 시 금융위기"…협상 와중에 '여론전'
이 대통령은 22일 공개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500억달러를 인출해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 때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일본과 외환보유액 규모 등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일 양국이 통화스와프를 유지 중이란 입장도 전했습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을 위한 방미 전 <로이터통신>, <BBC>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협상을 포기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혈맹 사이에서 최소한의 합리성은 유지될 것이라 믿는다"고 답했습니다. 또 협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선 "불안정한 상황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이번 인터뷰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투자할 경우 한국에 금융위기 때와 같은 상황이 올 것이라고 발언한 것은 지난 18일 공개된 <타임지> 인터뷰에서 "(미국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였다면 탄핵 당했을 것"이라고 언급한 내용과 결이 같습니다. 이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요구 조건이 지나치다는 메시지를 거듭 내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구두 합의를 통해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를 인하하고, 한국이 그 대가로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투자 방식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협정 문서화도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최근 미국에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화스와프는 자국의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뒤 미리 정한 환율로 상대국의 통화를 빌려 오는 방식입니다. 통화스와프 체결 시 외환보유액을 쓰더라도 원·달러 통화스와프를 통해 외화 부족 사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통화스와프 제안을 수용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대통령 탄핵'과 '제2의 금융위기'를 거론한 것은 대미 협상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입니다. 즉,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여론전에 나선 것이란 지적인데요. '미국의 요구가 과도하고 부당하다'는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제80차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하기 위해 22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 탑승하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국내 비판 여론 '잠재우기'
이 대통령은 전날에도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군대는 장병 병력에 의존하는 인해전술식 과거형 군대가 아니라, 유무인 복합체계로 무장한 유능하고 전문화된 스마트 정예 강군으로 재편해야 한다"며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특히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선 "굴종적 사고"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자주국방' 메시지는 한·미 양국의 안보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대해서도 협상이 진행 중임을 감안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자제해왔습니다.
현재 미국은 안보 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동맹 현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동맹 현대화는 주한미군 감축, 주한미군 재배치, 한국의 국방비 증액이 핵심 내용입니다. 미국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칫 한국이 유사시 전쟁의 중심에 서게 될 수 있는 위험 부담이 커서 한국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강조한 것은 관세 협상과 연계해 미국과의 안보 협상에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전반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도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민심이 미국의 요구가 부당하고 과도하다는 데 반응한다면 한국 정부로선 여론의 지지를 업고 대미 협상 과정에서 한층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이 대통령 지지율은 한·미 협상 난항과 여권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압박 등의 영향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날 공표된 <에너지경제·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9월15~19일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9%포인트·무선 ARS 방식)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1.5%포인트 빠진 53.0%였습니다. 2주 연속 오차범위 안에서 하락세를 이어갔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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