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감원장, '소비자 보호 강화' 억지 설정 빈축
2025-09-24 15:08:34 2025-09-24 17:36:23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연일 강조하며 정부 코드 맞추기를 위한 억지 춘향식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요 현안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다른 현안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원장의 친정부 행보에 비추어 볼 때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이뤄질 경우 감독기관이 정부 입김에 휘둘릴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 코드 맞추기 분주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정부 기조에 따라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추진은 이재명 대통령의 10대 공약집에 담긴 핵심 과제이기도 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금융감독체계 개편으로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를 금소원으로 분리·신설하고 금감원·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4일 취임한 이 원장은 가장 먼저 금감원 내부에 소비자보호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습니다. TF에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총괄 업무를 담당하는 소비자보호부서뿐만 아니라, 금융상품(약관) 심사 및 책무구조도 등을 담당하는 각 업권 감독국 등이 참여합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소비자보호 중심의 내부통제 구축, 금융상품 출시 단계별 책무 배분, 금융상품 심사 및 감독 강화 방안 등을 논의 중입니다. 
 
정부·여당안대로 금소원을 분리·신설할 경우 금감원에서 이동할 인력은 현재 금소처 조직을 비롯해 TF 조직 기준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내부 반발이 극심한 상황입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조직이 단일대오로 뭉치기 위해 조직 수장에 대한 비난은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면서도 "금감원장이 정부 논리에 앞장서서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 원장은 이미 금융당국 조직개편 방안에 대해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습니다. 그는 임원회의에서 "금감원은 공적 기관으로서 정부 결정을 충실히 집행할 책무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원장은 얼마 전 금감원 노조와의 면담에서는 "독립성 및 중립성 약화 우려에 대해 엄중히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며칠 새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 원장은 취임 후 은행과 보험, 여전사, 저축은행 등 업권별 릴레이 회동을 가지는 자리에서도 한결같이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금감원장으로서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정작 업계 현안에 대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에서는 PF 부실 처리 문제가 여전히 업계 전반의 부담 요인이자 금융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 원장이 건전성 관리를 주문하기는 했지만 또다시 '소비자 보호'를 전면에 내세웠는데요. 상호금융권의 경우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적용받지 않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도 개선 해법은 별도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정부·여당의 금융당국 조직개편 방안에 대해 "금감원은 정부 결정을 충실히 집행할 책무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금융권 간담회에서 금감원 노조와 직원들이 '금소원 분리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가운데 이 원장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기관 예속 벌써 현실화"
 
이 원장이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금융위원회와 같은 메시지를 내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가 큽니다. 금융위는 최근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RW)를 상향하고 주식 투자와 벤처캐피탈(VC) 투자에 대해선 완화하는 내용의 생산적 금융 확대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금융위에 이어 금감원까지 나서자 금융 시스템 건전성 관리는 뒷전으로 밀린 것이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재 금융시장은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지연으로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전액 현금으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협상 조건으로 요구하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지연과 관련해 "원안대로 관세가 타결되면 금융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대내외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금감원장이 소비자 보호 메시지만 강조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금감원이 둘로 쪼개지고 공공기관 지정이 되면 정부 조직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부·여당은 금융감독 정책 컨트롤타워인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를 신설하기로 했지만, 금융위에서 간판만 바꿔 다는 수준입니다. 관치금융 문제를 줄이고 감독 독립성을 지키려던 노력과 상충됩니다. 
 
금융당국 간 업무 중첩이 문제가 된 '금융위·금감원' 체제가 그대로 이어지고, 감독 수행 기관인 금감원은 금감원· 금소처로 쪼개진 이후 금감위뿐만 아니라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개편 후 신설)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정부로부터 예산과 인사 등을 통제받을 경우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워질 것이란 걱정이 큰 상황입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건전성 관리와 업권별 리스크 대응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소비자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며 "감독당국 수장으로서 정부 코드 맞추기에 치중하기보다는 실질적 감독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억원(사진 오른쪽)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당국 조직개편과 생산적 금융 확대 방안 등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면서 금융감독 독립성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장 집무실에서 이 위원장과 이 원장이 첫 회동을 갖고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금융위·금감원)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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