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은 신생아들의 젖병을 통해서도 인체로 들어온다. (사진=Wikipedia)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미세플라스틱과 이른바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로 불리는 과불화화합물(PFAS)이 인체에 침투해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증거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세플라스틱이 주요 동맥, 장, 간, 그리고 뇌에서까지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미세플라스틱이나 PFAS가 몸에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이것들을 체내에서 배출시킬 수는 없을까요?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체내에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제거하기 위한 새로운 치료법과 그 과학적 근거에 관한 특집 기사를 실었습니다. 미세플라스틱 제거를 목표로 한 최신 요법과 보충제를 소개하고 실제 효용성을 검토한 해당 기사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아페레시스(Apheresis)
‘분리해 제거하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이름을 빌어온 이 요법은 체내 혈액에서 혈장을 분리하고, 혈장 속 유해 물질을 제거한 다음 다시 환자에게 투입하는 것입니다. 주로 중증 고콜레스테롤 환자나 자가면역질환 환자에게 적용되던 방법을 응용해, 일부 의료기업들이 미세플라스틱 제거를 위해 실험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혈액을 뽑아 정화하는 여러 장치를 승인한 바 있습니다. 이 장치들은 전통적으로 겸상적혈구빈혈(sickle cell disease)이나 우리가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 하는 저밀도 지단백(Low-Density Lipoprotein) 수치를 낮추는 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존의 혈액 정화 장치들은 미세플라스틱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합니다.
치료적 혈장 교환(TPE, Therapeutic Plasma Exchange) 기술을 활용하여 혁신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선전하는 미국 시애틀의 의료 스타트업 서큘레이트 헬스(Circulate Health)는 아페레시스를 통해 혈액 내 미세플라스틱 농도를 낮추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혈액에서 일시적으로 미세플라스틱 농도를 낮출 수 있더라도, 체내 다른 조직에 이미 축적된 미세플라스틱까지 제거할 수 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아페레시스를 한번 시술하는 데는 1만달러가 넘는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바이오틱스와 실험적 치료제들
최근 일부 기업들은 장에서 미세플라스틱의 흡수를 억제한다는 프로바이오틱스 보충제를 개발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에 본사를 둔 위노(Winnow)는 미세플라스틱에 달라붙어 장에서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며 프로바이오틱스를 50달러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애리조나의 건강보조식품 회사인 옵티멀 헬스 시스템스(Optimal Health Systems)는 플라스틱 가소제로 사용되는 프탈레이트(phthalate) 해독을 위한 최초의 제품이라고 광고하며 한 병에 36달러짜리 보조식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프탈레이트는 체내 호르몬 교란 물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신생기업인 엘로라 테라퓨틱스(Elora Therapeutics)는 신체의 플라스틱 폴리머와 미세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함유한 주사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치료제는 체내에 이미 축적된 플라스틱 입자를 제거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안전성과 부작용 가능성에 대한 임상 시험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비판적인 과학자들은 이러한 보충제의 효과를 신뢰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체내 미세플라스틱의 이동 경로나 축적 방식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고, 실제 인체에서 얼마나 제거되는지에 대한 임상 데이터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새로운 치료법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검증된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과학적 근거는 아직 미흡
미세플라스틱 제거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과학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독일 드레스덴 공과대학 연구진이 과학 저널 <뇌의학(Brain Medicine)>에 발표한 예비 연구에 따르면, 치료적 아페레시스가 인체에서 미세플라스틱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체내 다른 조직에 축적된 미세플라스틱까지 제거할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오리건 주립 대학에서 환경 속 미세플라스틱을 연구하는 생태 독성학자 수잔 브랜더 교수는 “현대 사회에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면서 “현대 사회에서 미세플라스틱 노출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치료 후에도 지속적인 재노출이 문제로 남는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지나친 제거 치료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부작용 위험이 있으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상용화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세플라스틱은 우리 일상과 환경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오염물질입니다. 최신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지만, 그 효과와 안전성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방 중심의 정책과 연구, 그리고 체계적인 임상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아페레시스, 보충제, 주사제 등 새로운 치료법들은 앞으로 가능성을 보여주는 초기 연구 수준에 불과하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건강 관리 전략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화학물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프라이팬, 생수병, 식품 포장재, 방수 의류 등에서도 검출되며 체내에 흡수되어 간을 비롯한 장기에 축적된다. (사진=챗GPT 생성 이미지)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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