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미국과 중국이 100% 추가 관세 부과와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각각 철회하기로 하면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1개 회원국의 목소리를 담을 '경주 공동선언문' 채택에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주 선언엔 "자유무역을 지지한다"는 내용은 빠질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관세'로 상징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다수의 회원국들이 개방된 무역과 투자를 강조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왼쪽)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가 지난 25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5차 무역 협상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5년 만에 '자유무역 제외' 가능성…리창 "보호주의 반대" 강조
27일 APEC 준비기획단에 따르면 정상회의는 10월31일에서 11월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립니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제 행사입니다. 이번 회의엔 미국과 중국, 일본 등 21개 회원국이 한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통상 정상회의 마지막 날에 21개 모든 회원국이 합의해서 도출하는 이른바 '경주 선언'이 발표됐는데요. 회의 마지막 날인 11월1일을 앞두고 국가별로 경주 선언에 들어갈 문구를 놓고 최종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경주 선언 내용에 자유무역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될지는 미지수입니다. 2021년부터 2024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집권 땐 다자간의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문구가 선언문에 포함된 바 있는데요.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집권해 중국 등과 '관세 전쟁'을 시작한 올해는 미국과 다른 회원국들 간 이견이 있어 다자간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내용은 포함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2023년 미국, 2024년 페루 APEC 정상회의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간 무역 체제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이 도출된 것과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자유무역에 대한 언급이 선언문에 들어갈지에 대해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조 장관은 지난 2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경주 선언에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지켜 나가기 위한 원칙이 포함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자유무역 복원과 같은 선언은 나오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보호 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미국의 입김이 강하다는 취지로 풀이됩니다.
실제 올해 APEC 정상회의 선언에서 '자유무역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빠질 경우, 2020년 이후 5년 만입니다. 그만큼 다자주의·자유무역주의를 뒤로 하고 보호무역주의·자국우선주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힘을 싣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습니다. 세계 경제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도 이날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겨냥해 "자유무역과 다자무역 체제를 공동으로 수호하고 모든 형태의 보호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미·중 회담에 달린 '경주선언'…AI·인구·성장 '핵심 메시지'
결국 오는 30일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경주 선언에 '자유무역 지지' 내용이 포함될 것인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미·중 정상회담 결과가 중요하다"며 "결과에 따라 자유무역 지지 내용이 공동선언에 포함되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끝까지 가겠다는 신호고, 만약 (자유무역 내용이) 공동선언에 포함된다면 미국이 갈 수 있는 한계가 여기까지구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전날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경주 선언과 관련 "남은 문제가 여전히 좀 있지만 많이 정리됐고, 미국과 중국 사이 조정 역할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번 APEC을 통해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의 협력 정신 복원과 상호 연대, 유대 강화를 통해 전 세계적인 경제적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방안을 논의해 보고자 하는 게 주요 메시지"라고 강조했습니다.
대체로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은 그해 회의 주제를 토대로 결정됐습니다. 올해 회의 주제가 '연결·혁신·번영'인 점을 감안하면 신기술을 활용한 공급망 안정,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 등의 문구가 경주 선언 내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 정부는 APEC 의장국으로서 인공지능(AI)와 인구 구조 변화 대응을 핵심 의제로 제시했는데요. 정부는 두 분야에서 별도 선언문 채택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AI 협력을 통한 과제 대응과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미래 도전 과제가 경주 선언에 포함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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