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국민의힘이 한·미 관세 협정을 두고 '6000억달러짜리 외교 참패'라는 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실제 협상으로 늘어난 부담보다 과장된 계산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적절치 않은 셈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미 투자 수익 90%가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란 진단도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힘 셈법, 과장됐다"
29일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국민의힘의 한·미 관세 협상 '6000억달러(한화 약 859조) 외교 참패'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우리나라가 부담해야 할 총규모는 3500억달러가 아니라 에너지 1000억달러, 기업 투자 1500억달러를 합쳐 6000억달러"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7월31일 한·미 관세 협정 과정에서 정부가 약속한 △대미 투자 패키지 3500억달러(한화 약 501조원) △미국산 에너지 제품 수입 1000억달러(한화 약 143조원) △한국 기업 대미 투자 1500억달러(한화 약 214조원)를 모두 더해 '비용'으로 산정한 결과입니다. 이에 과한 셈법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가 현재까지 협상을 이어가는 건 대미 투자 패키지 3500억달러에 대한 내용입니다. 2000억달러는 반도체·이차전지 등 한국 전략산업에, 1500억원은 조선업 협력 전용 펀드에 투입됩니다. 구체적으로 현금 투입·대출·보증 등의 비율을 놓고 치열한 협상이 진행 중입니다.
이 밖에 국민의힘이 더한 1000억달러는 올해부터 4년간 미국으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 원유 등을 수입하는 비용입니다. 한국은 이미 미국으로부터 에너지를 대량 구매하는 만큼, 수입량을 늘리는 방식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1000억달러를 모두 새로운 재정 부담으로 바라보는 계산법은 맞지 않습니다. 현재 수입량(2024년 기준 약 31조1480억원)을 감안했을 때 미국산 에너지 수입액 규모는 4년 동안 104억달러(한화 약14조원)가량 늘어납니다. 또 민간기업이 투자하는 1500억달러의 경우에도 관세 협정 체결을 위해 만들어진 밑지는 조건이 아닌 국익에 필요한 투자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입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날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딜(한·미 관세 협상 거래) 규모 자체가 6000억달러 규모라고 얘기하는 건 과한 측면이 있다"며 "민간투자의 경우에도 투자를 예정했던 계획이 담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 수입의 경우 비용적 측면으로 볼 수 있지만 기업의 투자는 미국에 의해 종용된 건 아니다. 한국에도 도움 되니 한 것"이라며 "이를 합해 관세 협정으로 인한 부담으로 바라보는 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관세 협상의 관건은 3500억달러를 어떤 방식으로 투입하냐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주장은) 쟁점을 흐릴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대통령실기자단)
일본과 비교해 GDP 대비 부담 큰 건 '사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서 미국이 이익의 90%를 가져갈 것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이 또한 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국민의힘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한·미 관세 협상 타결 발표 직후 "(대미 투자) 수익의 90%는 미국민에게 간다"라고 언급한 내용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해석에 신중한 모습입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7월3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 측의 원문에 'retain 90% of profits from the investment'(투자 수익 90%를 보유)라고 돼 있다"며 "리테인(retain)이 무슨 뜻일지 논의해봤지만, 아직 펀드 구조나 투자자, 수익 배분 방식이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90%를 미국이 가져간다는 단정적 해석은 어렵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설명과도 같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과 관세 협정 체결 후 "투자 수익 90%는 미국이 가져간다"며 동일한 내용의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 역시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이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수익은 출자 비율에 따라 달라지며, 그 수익을 얻는 주체도 미국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앞서 관세 협정을 체결한 일본보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대미 투자 부담이 크다는 건 사실입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오기형 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는 경상수지의 3.5배, 외환보유액의 84.1%, 명목 GDP의 18.7%에 달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대미 투자(5500억달러, 한화 약 787조원) 규모는 경상수지의 2.8배, 외환보유액의 41.5%, 명목 GDP의 13.7%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요구대로 한국이 3500억달러의 투자를 3년 내 집행하려면 연평균 1167억달러의 외화 자금을 조달해야 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특별법 제정 등으로 법률 리스크를 해소하더라도 외환보유액 감소를 초래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달 가능한 외환 당국의 자금은 연간 150억달러 내외입니다.
조 교수는 "일본과 비교했을 때 GDP 대비 이번 관세 협상에 부담이 있다는 건 맞는 얘기"라며 "일본의 경제 역량으로 볼 때 5000억달러 정도는 잘 꾸려 나갔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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