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경평 정성평가 '고무줄 잣대' 우려
2025-11-06 16:03:35 2025-11-06 17:05:34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의 금융사 경영실태평가(경평)가 압박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당국은 잠재적 리스크 등 정성적 평가와 재무등급 등 정량적 평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방침이지만 '괘씸죄'에 걸린 금융사에 더욱 가혹한 기준을 들이댄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금감원 심기 건드린 '괘씸죄'
 
6일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손해보험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적기시정 조치를 받은 것은 일종의 '괘씸죄'에 걸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롯데손보에 대해 적기시정조치 중 가장 낮은 단계인 경영개선권고를 부과했습니다. 적기시정조치는 금융당국이 건전성이 악화한 금융사에 경영개선을 하도록 요구하는 행정조치입니다. 
 
금융위는 단기간 내에 적기시정조치 사유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시장에서는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말 기준 롯데손보의 킥스 비율은 141.5%로 당국 권고치 130%를 웃돌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그간 롯데손보와 당국 간 갈등이 여러 차례 표출됐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롯데손보가 금감원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순위사채 조기상환 의사를 밝힌 것이 대표적입니다. 롯데손보 입장에서는 콜옵션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경우 채권시장 내 신뢰도나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것입니다. 롯데손보는 여러 시도 끝에 결국 콜옵션을 철회했습니다. 
 
롯데손보가 당국의 신경을 거스른 것은 또 있습니다. 당국은 지난해 11월 무·저해지상품 해지율 가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이때도 롯데손보는 보험사 중 나홀로 '예외 모형'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금감원이 "당장의 실적 악화를 감추고자 예외 모형을 선택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압박하자 보험사들은 줄줄이 '원칙 모형'을 선택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예외 모형을 적용한 롯데손보에 대해 지난해 말 정기검사에 이어 올해 3월에 수시검사도 진행했습니다. 여기에 경영실태평가(RAAS) 등급을 결정하기 위한 추가 평가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금융위에 넘겼습니다. 
 
다만 금융당국은 괘씸죄 논란에 대해 선을 긋고 있습니다. 이동엽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롯데손보에 적기시정조치를 내린) 이번 조치는 법과 절차에 따른 결과"라며 "회사에 대한 평가와 조치는 객관적 지표와 규정에 근거해 이뤄졌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롯데손해보험에 대해 적기시정조치 중 가장 낮은 단계인 경영개선권고를 부과했다. (사진=뉴시스)
 
"시장 납득할 객관성 갖춰야"
 
하지만 경영실태평가 도입 이후 정성적인 비계량평가 결과가 적기시정조치로 직접 연결된 첫 사례인 만큼 논란은 이어질 전망입니다. 롯데손보는 이번 금융당국의 결정에 대해 자본적정성 부문의 계량평가 등급은 3등급이지만, 비계량평가 중 일부 항목에 대한 지적 사항을 반영해 4등급으로 결정한 점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롯데손보 측은 "금감원은 자본적정성 부문 비계량평가 4등급을 부여한 사유로 자체 위험 및 지급여력 평가체계(ORSA) 도입의 유예를 꼽았다"면서 "당사는 평가 매뉴얼보다 상위 규정인 보험업감독업무 시행세칙에 의거해 적법한 이사회 의결을 거쳐 ORSA 도입을 유예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지난해 말 기준 전체 53개 보험사 중 ORSA를 유예하고 있는 회사는 절반 이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른 금융사들도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우리금융지주(316140)의 경우 전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과 관련해 홍역을 치렀는데요. 그 과정에서도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경영실태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금융의 경영실태평가는 금융지주사감독규정에 근거한 것으로 금융지주사의 리스크 관리, 재무상태, 자회사에 대한 잠재 충격 등 전반적 경영 상태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통상 금감원이 정기검사를 마치고 경영실태평가 결과를 내기까진 약 1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우리금융 정기검사를 마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2달여 만에 평가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이전 사례를 고려할 때 졸속 평가라는 비판이 나온 가운데 우리금융 현 경영진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당시 경영실태평가 결과는 우리금융이 추진하는 동양·ABL생명보험 인수에 큰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금융당국 규정에 따르면 금융지주의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2등급 이상이어야 자회사 편입이 가능합니다. 금융지주 경영실태평가는 리스크 관리(40%), 재무 상태(30%), 잠재적 충격(30%) 등 세 가지 부문으로 나뉩니다. 
 
우리금융의 경우에도 자본건전성 기준이 보통주자본(CET1) 비율이 당국 권고치를 준수했음에도 결국 경영평가 등급 3등급을 받았습니다. 당국은 우리금융의 내부통제 등을 다루는 리스크 부문과 자회사 관리 등을 다루는 잠재적 충격(정량적 평가) 부문에서 점수를 하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영개선권고가 계량지표가 양호한 상황에서 비계량평가를 이유로 결정된 것은 피감기관 입장에서 납득하기 힘들다"며 "감독권이 예측 가능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감독 목표인 잠재 리스크를 제거하기 어렵고 시장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금융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경영실태평가가 압박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복도를 오가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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