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의 장녀인 박주형 부사장이 최근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하며 경영권 방어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조카의 난’을 일으켰던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올해 주주총회에 불참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된 듯 보였지만, 지난 9월 박 전 상무가 다시 이사회 재진입을 시도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박 부사장은 지난 9월부터 한 달 동안 11차례에 걸쳐 약 5억원을 투입해 자사주 4685주를 매입했습니다. 이에 따라 보유 지분율은 1.08%에서 1.09%로 0.01%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증가 폭은 제한적이지만, 박 전 상무와의 경영권 갈등이 재점화된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 의지의 신호로 해석됩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박 전 상무가 2021년 일으킨 경영권 분쟁, 이른바 ‘조카의 난’이 사실상 종료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박 전 상무는 2022년과 2024년 연거푸 이사회 진입에 실패했고, 올해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별도의 주주 제안을 제출하지 않고 의결권 역시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9월30일 금호석유화학이 자사주 담보 교환사채(EB) 발행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박 전 상무는 “주주가치 훼손”이라고 공개 비판하며 “경영권 분쟁은 종료되지 않았으며, 추가 지분 매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사회 참여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갈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금호석유화학 측은 EB 발행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습니다.
박 전 상무가 다시 이사회 진입을 시도할 수 있는 배경으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거론됩니다. 집중투표제가 적용되면 주주는 보유 주식 1주당 이사 후보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개인 최대주주인 박 전 상무가 보유한 9.82% 지분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경우 이사 선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집중투표제는 대주주보다 소수 주주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평가됩니다.
박철완 당시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지난 2021년 3월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울러 박 전 상무의 장인인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이 올해 2월 주식담보 대출을 추가로 받은 점도 주목됩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허 회장은 보유 주식 195만1213주 전량을 담보로 902억7900만원을 대출받았습니다. 이는 지난해 6월 357억9200만원보다 544억8700만원 늘어난 것으로, 152% 증가한 규모입니다. 담보 비율 역시 기존 76%대에서 100%로 확대됐습니다. 주식담보 대출은 기업 자금과 별개인 개인 차원의 자금 조달 방식이기 때문에, 이번 대출이 박 전 상무를 지원하기 위한 ‘화력 지원’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허 회장은 2021년 박 전 상무의 경영권 분쟁 당시 30억원을 투입해 금호석유화학 지분 0.05%를 확보한 바 있으며, 올해 10월 기준 보유 지분은 0.06%로 늘어난 상태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허 회장의 자금 용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과거 사례를 고려하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박 부사장의 지분 매입이 박 전 상무 견제뿐 아니라, 경영권 방어 의지를 외부에 확인시키는 신호라고 분석합니다. 동시에 박 전 상무가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 재진입을 예고한 만큼, 경영권 분쟁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징적 수준이라도 지분 매입은 ‘경영권 방어 의사’를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며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박 전 상무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내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갈등이 다시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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