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안보·국익에는 여·야·정 한목소리 내야
사실관계 왜곡·성과 평가 절하하는 '정치적 공세' 매우 위험
2025-11-17 09:54:50 2025-11-17 14:24:51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이전에 국론의 결집력이다. 역사는 이를 수없이 증명해왔다. 내부 분열로 스스로 무너진 나라의 말로는 비극이었다. 조선 말기 사색당파는 나라를 지킬 에너지보다 정쟁과 파벌 다툼에 몰두했다. 외세가 조선을 '무주공산'으로 보게 만든 것도, 일본의 침탈 야욕을 가능케 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국민적 단합의 부재였다. 세계사에도 유사한 사례는 넘쳐난다. 고대 로마는 계급 갈등과 귀족·무장 세력의 내분으로 국력이 약화되면서 결국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했다. 청나라 역시 양무운동 이후 서구 개화파와 보수 세력의 극심한 대립으로 국가 전략이 일관성을 잃었고, 내부 개혁 동력이 사라진 틈을 타 열강의 압박 속에 몰락했다. 중동의 시리아와 리비아도 내전에 빠지면서 외세의 개입과 국가 파괴로 이어졌다. 공통점은 단 하나다. 내부가 갈라진 국가는 외부의 도전에 절대 버틸 수 없다는 역사적 진리다. 
 
이런 점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한 한·미 관세·안보 협상에 대해 일부 정치권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성과를 평가 절하하며 정치적 공세에 몰두하는 모습은 매우 위험하다. 국익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협상은 복합적 이익과 손익을 따져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안보와 산업 경쟁력, 공급망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협상의 본질을 외면한 채 '무조건 실패' '굴욕 외교' 등의 정파적 프레임을 앞세우고 있다. 외교 사안을 국내 정치용으로 소모하면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쪽은 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다. 
 
특히 핵심 전략자산인 핵추진잠수함 확보,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 확보, 조선·방산 공급망 재편 협력, 대미 의회 설득 외교 등은 어느 하나도 정쟁의 소재가 돼서는 안 된다. 이는 앞으로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안보와 산업 방향을 결정할 '국가적 대형 과제'다. 특히 미국 의회를 설득하는 일은 대통령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 부처, 외교 라인, 국회가 동시에 움직여야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1970~80년대 일본의 원자력 외교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 확보를 관철하기 위해 총리, 자민당 간부, 외무성, 산업성, 기업인, 심지어 야당 지도부까지 한목소리를 냈다. 미국 의회를 상대로 하는 로비와 설득도 초당적이었다. 일본은 국가 차원의 총력전을 통해 미국의 신뢰를 얻었고, 그 결과 민감한 핵기술까지 자율적으로 사용할 권한을 확보했다. 이 성과는 지금의 일본 외교력과 산업 경쟁력을 받쳐주는 핵심 자산이 됐다. 
 
지금 한국도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핵추진잠수함 확보는 단순히 잠수함 한 척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 핵·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대에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고, 해군력의 근본적 체질을 바꾸고, 장기적으로 국가의 생존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이 문제는 누가 정권을 잡았는지와 무관하게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이런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정부대로 협상력을 발휘해야 하고, 국회는 국회대로 초당적으로 미국 의회와 소통하며 당파를 초월한 국가 외교전의 주체가 돼야 한다. 
 
외교·안보·국방 분야는 여전히 정치적 싸움의 언어보다 국익의 언어가 우선돼야 하는 영역이다. 여야가 정권 경쟁으로 치열하게 맞붙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생존과 직결된 사안, 특히 대미 협상과 전략무기 확보, 원자력 주권 회복과 같은 구조적 과제만큼은 '안보는 여야가 없다'는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국민이 단결하지 못한 국가는 외교전에서도, 안보전에서도, 기술전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잘했는지, 누가 못했는지 따지는 정쟁이 아니라, 나라를 망치는 사색당파의 역사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여·야·정이 한목소리로 국익을 위해 힘을 합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미래 전략은 완성된다. 국익 앞에서는 누구도 야당도, 여당도, 정권도 아니다. 오직 대한민국만 있을 뿐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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