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오 20년 서울시)④"서울시장 누가 되든 '시정 연속성' 이어가야"
신청사 지하·DDP·세빛섬·노들섬…'전임 지우기' 희생양된 시정
행정 전문가들 "배경은 정치 후진성…건물로만 평가받으려 해"
"정책 일관성 갖는 게 정도 …전임 일·인프라, 인정·활용 필요"
2025-12-08 16:06:00 2025-12-08 16:07:26
[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행정 전문가들은 9회 지방선거에서 누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든, 전임 시장과의 무의미한 차별화를 지양하고 시정 연속성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차별화만 몰두할 경우 혈세 낭비와 공무원들의 혼란 등에 따른 '행정력 소진' 문제가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2006년부터 약 20년간 서울시장은 단 두 명이었습니다. 오세훈 시장과 박원순 전 시장입니다. 먼저 오 시장이 5년을 재임했고, 박원순 전 시장이 9년을 했습니다. 이어 오 시장이 다시 5년째 시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서울은 소모적인 경쟁에 휘말렸습니다. 박 시장은 9년 동안 '오세훈 지우기'를 강행했고, 다시 돌아온 오 시장이 5년째 '박원순 지우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서울시청 본관(신청사) 지하 공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세빛섬, 노들섬 등이 '전임 지우기' 희생양이 됐습니다.
 
오세훈 시장→박원순 시장→오세훈 시장을 거치면서 신청사 지하 1·2층은 시티갤러리→시민청→서울갤러리로 간판과 모습을 바꿔달았습니다. DDP는 오 시장 때 '디자인 서울'을 상징하는 전시 공간으로 계획됐다가 박 시장 때 엎어졌습니다. 이후 복귀한 오 시장은  DDP의 본래 정체성을 되찾아 세계적인 디자인 메카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노들섬 역시 오 시장 땐 '한강예술섬', 박 시장 땐 '텃밭·음악섬'으로 변했습니다. 이후 복귀한 오 시장은 노들섬을 다시 '글로벌 예술섬'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장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시정은 재정 낭비를 야기했습니다. 신청사 지하 공간에 들어간 공사 관련 예산만 509억원에 달하는 걸로 추산됩니다. 노들섬 역시 박 시장 때까지 이미 860억원대 혈세가 낭비됐는데, 오 시장 2기에선 3704억원이 추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업에 '감사'의 칼날도 들이댔습니다. 박 시장은 2012년 7월12일 세빛둥둥섬에 특별감사를 진행, 오 시장 1기 때 서울시청과 ㈜세빛섬이 맺은 사업협약은 총투자비와 무상사용기간을 무리하게 확대하는 등 민자사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체결된 계약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 시장도 다시 서울시장으로 복귀한 뒤엔 박 시장 때 조성된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에 감사를 실시했으며, 2021년 10월13일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운영자를 민간위탁금 횡령혐의로 고발했습니다.
 
2016년 1월5일 서울시 종로구청에서 열린 종로구 신년인사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행정 전문가들은 자치단체장들이 차별화에 골몰하는 배경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만 다음 선거에서도 이길 수 있는 정치 풍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최인수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정치의 후진성 때문에, (무작정 차별화가) 표가 되니까 그렇게들 하는 것 아니냐"라며 "양당제 구도에선 상대를 비판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올라서지 못한다. 상대가 실수를 해야 하고 상대가 잘못해야만, 자신(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지금 정치 시스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는 자치단체장들이 자신의 정책이나 미래의 방향성 가지고 승부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며 "(그나마) 양당제에서의 경쟁이 지방자치단체의 (경제) 성장이라든가 시민의 삶의 질과 연동되기라도 하면 좋은데, 자치단체장들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랜드마크로 평가받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송윤정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도 "전임 시장 정책을 지우고 새로운 정책을 하는 게 '일을 하고 있다'라는 시그널을 주기에 좀 용이한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2019년 9월18일 노들섬 모습.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2026년 지방선거에 누가 시장에 당선되든, 소모적인 차별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시정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책 일관성을 갖고, 낭비적인 매몰 비용 발생이 없게 하는 것이 정도(正道)다"라며 "전임 시장이 했던 일이 큰 문제 없으면 되도록 그대로 인정하고 그냥 가져가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닌가"라고 했습니다.
 
송윤정 연구원 역시 "혈세 낭비로 인해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며 "재정 여건, 시민들의 실질적인 생활을 고려해서 있던 인프라를 잘 쓰는 방향으로 가고 전임 시장에서 좋은 인프라를 만들어 뒀다면 잘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식으로 행정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아닌가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2026년 지방선거 홍보 이미지. (그래픽=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아울러 자치단체장이 차별화에만 몰두해서 벌어지는 낭비를 줄이려면, 지방의회와 시민사회의 감시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송윤정 연구원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예산 바로쓰기 감시단'이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판을 (지자체가) 깔아주진 않는다"며 "어느 관료든지 시민들이 사업을 지켜보는 게 반가울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산 바로쓰기 감시단'을 집행부보다는 지방의회 소관에 둔다든가, 아니면 지방의회와의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식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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