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피지컬 AI)인간이 조종하는 기계의 멸종, 스스로 행동하는 지능이 온다
제2회/ 최홍규 연구위원·AI교육팀장(EBS)
2026-04-09 14:11:28 2026-04-09 14:51:54
최홍규 연구위원·AI교육팀장(EBS) / 미디어학 박사
 
언젠가 이러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지금 살아가는 일상이 사실은 누군가 정교하게 설계한 시뮬레이션은 아닐까, 그리고 그 안에서 정해진 궤적을 따라 움직이는 나 또한 하나의 정교한 기계는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한때 공상과학의 단골 소재였던 이러한 상상들은 이제 전혀 다른 얼굴로 우리 곁에 도착해 있다. 2026년 현재,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AI)이 스스로 신체를 움직이며 현실의 물리적 공간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스스로 행동하는 주체라고 믿어왔던 관념은 이제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인간 이외에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또 다른 지능과 공존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철학적 배경은 70여년 전,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의 사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저서 『사이버네틱스와 사회』(The Human Use of Human Beings: Cybernetics and Society, 1950년 초판; 1954년 개정판)를 통해 인간과 기계, 그리고 환경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스스로를 제어하는 유기적 피드백의 원리를 제시했다. 당시의 통찰은 오늘날 AI가 텍스트라는 기호의 세계를 벗어나 신체라는 물리적 실체를 입고 실천적 행동을 시작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출현의 의미를 읽어내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AI는 이제 정보를 처리하는 추상적인 계산기를 넘어, 신체를 매개로 외부 세계와 정보를 교환하며 스스로를 조정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진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피지컬 AI라고 하면 흔히 로봇을 떠올리는데, 여기서 우리는 로봇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로봇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은 세대별로 확연히 다르다. 과거의 로봇이 충직하게 프로그래밍된 궤적을 복사하거나 사람이 직접 조종해야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기계였다면, 이제는 그 인식을 넘어 변화하는 미래의 본질을 살펴야 한다.
 
공장 라인에서 수만개의 미세한 부품을 스스로 분류해 조립을 완수하는 휴머노이드, 인간과 눈을 맞추며 대화의 맥락에 맞춰 사과를 건네고 주변의 쓰레기를 치우는 서비스 지능, 그리고 사람의 관절로는 불가능한 각도로 몸을 꺾으며 복잡한 공장 과업을 수행하는 기계들의 모습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은 인간의 조종에 의지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물리적 환경을 직접 지각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구체화된 지능(Embodied AI)으로서의 실행력을 보여준다. 즉, 피지컬 AI의 가치는 외부 명령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신체를 제어하는 실천적 역량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피지컬 AI의 출현과 가속화를 이끄는 동력은 무엇일까? 이는 기술적 진화와 산업적 실현이라는 흐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지능이 세상을 배우는 방식이 달라졌다. 엔비디아(NVIDIA)가 2024년 GTC 컨퍼런스에서 공개한 프로젝트 GR00T(Generalist Robot 00 Technology)가 대표적이다. GR00T는 시각 정보와 인간의 움직임을 동시에 인식하는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을 기반으로 설계됐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 학습 플랫폼을 지향한다. 특히 프로젝트 GR00T가 가상 세계 시뮬레이션 환경 내에서 물리 법칙을 몸소 익히는 방식은 지능의 학습 경로를 바꿔놓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AI는 우리와 똑같이 중력과 마찰력을 느끼며 실질적인 과업을 해내는 주체적인 행동가로 거듭날 수 있다.
 
또한 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경제성을 확보하며 우리 일상에 스며들고 있는 것도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한국기계연구원(KIMM)은 정책보고서[기계기술정책 제122호(2026년 4월)]를 통해 올해를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구실을 벗어나 사실상 실제 매출을 만드는 상용화 임계점에 진입하는 시기로 평가했다. 이러한 흐름은 중국의 유니트리(Unitree) 같은 기업들이 대량 생산 체제를 통해 로봇의 가격을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중고차 한 대 값 정도의 수준으로 낮추면서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가격 장벽의 완화는 로봇이 소수의 산업 현장에 머무는 특수 장비가 아니라 일상의 여백을 채우는 물리적 매체로 진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여기에 AI 학습 구조의 혁신도 힘을 보탠다. 2024년 1월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연구팀과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공동 개발한 모바일 알로하(Mobile ALOHA) 프로젝트가 그 예다. 이 프로젝트는 인간의 실제 시연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로봇이 요리를 하거나 물건을 옮기는 등 복합적인 과업을 스스로 습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데이터로부터 행동까지 직접 연결되는 일종의 종단 간 모방 학습(End-to-End Imitation Learning) 구조가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좋은 사례다. 피지컬 AI는 이제 인간의 지시를 해석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행동 양식을 신체적 지능으로 흡수하며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 앞에 스스로 행동하는 지능, 피지컬 AI의 시대는 현실이 되었다. 화려한 말솜씨보다 물리적 환경 속에서 과업을 완수해 내는 행동의 실천력이 지능의 수준을 증명하는 잣대가 된 시대, 우리는 근본적인 물음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피지컬 AI는 인간의 지시를 단순 수행하는 장치를 넘어 우리와 같은 공간을 점유하며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존의 파트너다. 이는 인간만이 향유해 왔던 신체적 경험과 판단의 영역에 지능이 동참하는 사건이며, 우리가 기술과 맺는 관계가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차원을 넘어 서로의 물리적 움직임을 예측하고 배려해야 하는 실존적인 수준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기계가 우리와 나란히 걷고 스스로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 시대, 인간에게 필요한 역량은 기계를 조작하는 기능적 숙련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계의 자율적인 행동 속에 인간의 가치를 심고 책임의 주체를 설정해 삶의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이 가장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피지컬 AI를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AI가 생각을 넘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지금, 우리는 그들의 발걸음 위에 어떤 인간적 의미를 불어넣고 어떤 책임 있는 사회를 설계해 나갈 것인가. 우리의 통찰력 있는 대비가 스스로 움직이는 지능의 시대에 인간의 자리를 지켜낼 실질적인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한 이 새로운 지능과 나란히 걸을 준비가 되었는가.
 
최홍규 연구위원·AI교육팀장(EBS) / 미디어학 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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