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최근 기업공개(IPO)를 추진한 예비 상장사들은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 문턱이 높아졌다고 볼멘소리를 냈습니다. 특히 지배구조(거버넌스) 요건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는 전언입니다. 그동안 일부 중소형 상장사 대주주가 일반주주와 이해상충되는 부정행위를 저질러 시장을 교란하고 상장폐지로 이어지는 잔혹사가 반복되자, 거래소가 상장 관문부터 고강도 옥석 가르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거래소 상장 예비심사를 준비 중이거나 청구한 기업들은 대주주의 지배력 억제와 경영 분리를 뼈대로 하는 강도 높은 내부통제 장치를 요구받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일반 상장을 추진했던 A사는 최대주주의 지분이 부족해 IPO 추진 과정에서 정관에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려 했습니다. A사에 투자한 다른 주주들은 복수의결권 도입을 허용해 줬으나, 상장 심사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관사의 말을 듣고 물러섰습니다.
A사 대표는 “경영권 지분이 희석될 것을 우려해 복수의결권 도입을 주관사에 문의했으나, 정관에 이를 반영할 경우 상장 심사에서 사실상 감점 요인이 된다는 답변을 듣고 포기했다”며 “대주주의 독단 경영이나 사익 편취 등 제도적 부작용이 심사 과정에서 '지배구조 결격 사유'로 인식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어 “정부가 벤처 육성을 위해 법으로 허용해 놓고, 막상 상장 관문에서 이를 족쇄 취급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했습니다.
복수의결권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가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제도로,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2023년 11월17일부터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국내 도입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앞서 2024년 2월 종합 물류 벤처기업인 콜로세움 코퍼레이션이 국내 최초로 복수의결권을 도입한 바 있습니다. 또 최근 액화수소 전문기업 하이리움산업이 복수의결권을 보유한 상태로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복수의결권을 가진 벤처기업이 상장할 경우 상장 후 최대 3년까지만 유효하며 이후에는 모두 보통주로 강제 전환됩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지배력 집중으로 인한 일반주주 피해나 코리아디스카운트를 경계하는 거래소의 보수적 잣대까지 고려하면 예비 상장사로선 복수의결권을 관철할 실익이 크지 않습니다.
상장 추진 중인 B사는 더욱 깐깐해진 심사 분위기를 방증했습니다. B사의 소유구조가 다소 복잡한 형태를 띠자, 거래소는 최대주주의 경영 개입을 원천 차단해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에 B사는 전문경영인체제를 굳히고 주관사가 추천한 인물로 사외이사를 임명했으며 최대주주가 회사 경영에 관여할 수 없도록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한 뒤, 3년간 대형 로펌을 통해 리걸다큐멘테이션(법률 검토보고서)을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나아가 상장 후 지분 매각(오버행)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통상적인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최대 3년의 보호예수(락업) 기간까지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기본 규정상 코스닥과 코스피 일반 상장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보호예수 기간은 최소 6개월입니다. 기술특례상장은 최소 1년간 의무보유해야 합니다.
B사 대표는 “상장 준비를 하면서 거래소가 지배구조 부분에 요구하는 강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체감했다”며 “자발적 보호예수 3년 정도를 요구하는 것 같은데, 요즘 다른 예비 상장사 최대주주들한테도 그 수준을 요구한다고 들었다”고 했습니다.
자본시장에서는 이 같은 기류 변화를 두고 최근 금융당국이 강력하게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및 투자자 보호 기조와 무관치 않다고 해석합니다. 이른바 '파두 사태' 등 잇따른 새내기주들의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거래소가 기술특례상장 등 심사 전반에 걸쳐 방어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후진적 지배구조를 자본시장 진입 관문에서부터 철저히 걸러내겠다는 의지로 분석됩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최근 상장 심사 실무진과 소통해 보면 매출 추정치 같은 정량적 지표 이상으로 대주주의 성향, 과거 자금 거래 내역, 이사회 구성 등 지배구조 요소를 현미경 들이대듯 꼼꼼히 살핀다"며 "투자자 보호와 밸류업 차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허용치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어 '보이지 않는 규제'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거래소 전경. 사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