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흔든 106일 중동전쟁…답은 '공급망 대전환'
'60일 통항 물꼬' 텄지만 불확실성 상존
미·이란 주도권 싸움에 불안감 여전
'106일 중동전쟁'…'자원 빈국' 한국 직격탄
GDP 대비 산업정책 지출 1.06%↓ 역행
'유라시아 물류 재편' 대응 최대 과제
2026-06-25 18:00:00 2026-06-25 18:10:51
[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종전 협의에 따라 60일간 ‘통항 물꼬’는 텄지만 106일 동안 이어진 중동 전쟁이 한국 경제에 남긴 상흔은 깊고 뼈아픕니다. 거듭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안과 유가 변동성, 원자재 수급 차질은 자원 빈국이면서도 수출 강국인 대한민국의 민낯과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종전 협정 체결에도 물밑에서 벌어지는 미국·이란 간의 주도권 싸움이 팽팽해 불확실성은 여전합니다. 에너지와 핵심 광물의 높은 대외 의존도는 위기 때마다 한국 제조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단발성 임시방편 대응에서 공급망 구조 자체를 위기 대비형으로 전면 개편한다는 방침이나 단순한 도입선 다변화나 비축 확대만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다각적 전략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5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제1회 산업·자원안보 전략회의'를 열고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에 근거한 '자원안보 기본계획 및 핵심광물 비축계획'에 대한 수립 방향을 밝혔다.(사진=산업통상부)
 
공급망 위기 대비형 '재설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5일 서울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전문가 및 업계 관계자와 ‘제1회 산업·자원 안보 전략회의’를 열고 자원 안보 기본 계획, 핵심 자원 비축 계획 등을 논의했습니다. 첫 산업·자원 안보 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은 국가 기간산업 전체가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다는 취약점을 이번 중동전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해 온 패러다임은 필요한 시점에 적정 물량을 조달, 비용을 최소화하는 ‘적시 공급’ 체계였습니다. 하지만 106일간의 중동 위기처럼 수송로가 막히거나 핵심 자원의 ‘초크 포인트(병목점)’가 발생할 경우 원료 도입 차질로 인한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됐습니다.
 
전쟁 기간 원료 도입 차질은 소재 생산 감소로 이어지며 반도체 등 첨단 전략산업과 보건의료 등 필수재 분야까지 공급 병목 현상이 확산된 바 있습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공급망 구조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위기 대비형’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도입선 다변화와 비축량 확대를 넘어 자원 개발의 원천이자 공급망 최상단인 ‘업스트림(상류)’ 자산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통제하는 국가적 역량 결집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이날 “위기에 대한 단발성 대응을 넘어 앞으로 발생할 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필요한 시점에 적정 물량을 들여오는 방식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는 관점에서 공급망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5일 조재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을 보면, 한국 산업정책 지출은 2021년을 정점으로 감소하면서 2023년 GDP 대비 1.06%를 기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낮은 수준을 보였다. (출처=조재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업은 백화점식…예산은 쪼개기
 
한국 산업정책과 공급망 대응의 또 다른 고질적 병폐로는 ‘저규모·분산형’ 지출 구조도 꼽힙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교 대상 국가 중 가장 많은 수의 정책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개별 사업에 배정되는 예산 규모는 지나치게 적은 수준입니다.
 
즉, 재원이 잘게 쪼개져 분산된 구조를 띤다는 지적입니다. 지출 성격 또한 전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위기 시 국가 경제의 버팀목이 될 첨단 안보 자원이나 핵심 기술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조재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을 보면 OECD 국가의 산업정책 관련 지출은 GDP 대비 재정지출이 2019년 1.34%에서 2023년 1.55%로 증가했습니다. 글로벌 패권 경쟁에 대응해 주요국들이 보조금 곳간을 공급망에 투입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반면, 한국 산업정책 지출은 2021년을 정점으로 감소하면서 2023년 GDP 대비 1.06%를 기록, OECD 대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출·보증 등 금융지원도 GDP 대비 0.49%에 그쳐 OECD 평균(0.92%)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요국들이 자국 공급망을 요새화할 때 우리는 실탄을 줄여왔다는 의미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뚫고 200만배럴의 원유를 실은 유조선 유니버설호가 6월10일 울산 남구 울산항 원유부이로 정박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5대 운송회랑 넓히는 '유라시아 재편'
 
특히 글로벌 물류 지도의 재편을 위한 우회로 개척은 최대 과제입니다.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변화하는 유라시아 물류 지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을 보면, 러·우 전쟁 이후 서방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러시아는 기존 유럽 중심의 물류망을 벗고 카스피해, 이란을 거쳐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북남국제운송회랑(INSTC)’ 중심의 남진 정책과 극동·시베리아 철도를 확충하는 동진 정책으로 구조적 전환을 단행했습니다.
 
러시아는 최근 동부 방향, 북서 방향,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 아조프–흑해 방향, 북극항로를 '5대 국제운송회랑'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을 승인한 바 있습니다. 서방 제재에 맞서 국제운송회랑을 대외 경제 재편과 수출 확대를 견인하는 핵심 성장축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강부균 대외연 전문연구원은 “한국은 유라시아 물류 질서 변화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 구축, 러시아와 실용적 협력 채널 유지 및 신뢰 기반 구축, 중국·일본·미국 등 극동·북극 물류 관련 주요 이해관계국과의 공동연구 및 협력 네트워크 확대, 한·미·러 협력 가능성을 고려한 에너지·물류 공급망 안정화 방안 모색, 국제 정세를 고려한 단계별 북방 물류 협력 전략 및 공급망 대응 시나리오 마련 등을 통해 북방 유라시아 연결성과 중장기 협력 기반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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