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무언' 금융협회, 살벌한 공약에 정책건의 패스
2025-05-23 06:00:00 2025-05-23 0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권이 대통령 선거라는 이벤트를 앞두고도 무력한 분위기입니다. 대선 후보들이 '상생 금융'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는 가운데 '퇴짜'를 맞을 가능성이 커 정책 건의는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금융산업 발전이나 수익 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는커녕 앞으로 수익 악화를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협회 차원 정책 제안 없어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각 업권을 대변하는 금융협회는 대선을 앞두고 정책 건의를 별도로 하지 않았습니다. 은행연합회를 비롯해 생명보험·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금융투자협회 등 6개 금융협회는 그간 대선 때마다 여야 대선 후보 캠프에 업권 공동 또는 개별적으로 금융산업 성장을 위한 건의 사항을 전달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선 후보 공약들은 대체로 서민·소상공인(자영업자)·청년들을 위한 금융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은행권은 상생금융 지원 확대를 예상하는 가운데 정치권에 정책 제언을 하기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입니다. 
 
대선 후보들 공약에 따라 차기 정권에서는 상생금융 지원 확대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지난 정권 때부터 은행권이 이자 장사라는 비판을 받아왔고 은행권을 옥죄는 규제가 나올까봐 차기 정부에 제도 개선 등을 제언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카드사,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여신협회에서는 카드가맹점 수수료 현실화 등이 숙원입니다. 카드사들은 2015년부터 4차례에 걸친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라 본업인 신용판매로 수익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1.5%~2.12%던 가맹점 수수료율은 올해 0.4%~1.45%까지 낮아졌습니다.
 
카드 수수료율 인하는 굵직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입니다. 대선이 끝나더라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카드사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가 민주당과 정책 협약을 체결하면서 카드산업 관련 규제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대신하는 분위기입니다.
 
금융투자협회에서는 민주당 등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입장이 갈려 있고, 재계에서는 경영권 위축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입니다.
 
여야 유력 후보들의 대선 후보 공약을 보면 금융사들이 규제 완화를 건의할 분위기가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주요 정당 대선후보들이 가계 및 소상공인의 금융 부담 완화를 위한 금리 인하, 대출 관련 각종 수수료 폐지 등을 내세운 상황에서 된서리만 맞을 수 있어서입니다. 대선 후보들은 민생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금융권이 어느정도 '희생'을 동반하는 공적 역할을 수행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상생금융 압박이 커지면서 은행권이 긴장하고 있다. 지난 1월20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더불어민주당-은행권 현장간담회 모습. (사진=뉴시스)
 
상생금융 압박 분위기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가산금리법' 공약은 가산금리 산정 시 차주에게 법적비용을 전가하지 못하도록 예금자보호법상 보험료와 법정 출연금 등을 제외하는 게 핵심입니다. 공약대로라면 차주의 원리금 상환부담 경감이 기대되는 반면 은행은 수익과 직결되는 예대금리차 축소가 불가피합니다. 민주당에서 해당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데 이어 대선 공약으로 확정해 속도감 있게 추진될 전망입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서민·소상공인 금융 지원 확대를 공약으로 내놓은 만큼, 어느 후보가 정권을 잡더라도 서민과 소상공인 지원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런 재원이 정부 예산을 통해 마련하기보다는 민간 금융사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윤석열정부에서도 금융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은행이 직접 재원을 내놓거나 혹은 챙겨야 할 이자 등을 포기하는 형태로 정부 정책이 이뤄졌습니다. '상생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조 단위의 금융지원책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이번 정부에 이어 차기 정부에서도 은행으로서는 규모만 다를 뿐 방식은 같은 형태로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은행권은 올 들어 여야 의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청년 고용 정책자금 확대, 자본비율 규제 완화, 금융사고 공시 유연화, 가상자산 1은행·1거래소 규제 개편 등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정치권이 우선적으로 은행권 건의 사항을 취합했지만, 법 개정 사항이 아닌 규정이나 유권해석 변경은 소관부처인 금융당국이 결정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민생경제 회복이 정책 화두로 되는 만큼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전향적 규제 완화는 어려울 전망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상자산거래소 복수은행 허용은 가능성이 있지만, 지엽적인 방안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는 업권 건의사항을 내봐야 퇴짜 맞을 가능성이 크기에 대선 이후 정부 조직 개편이 되고 나서 논의해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생경제 회복이 정책 화두인 만큼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전향적인 금융 규제 완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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