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금융 지역농협, '은행' 사칭…손 놓은 금융당국
2025-10-28 06:00:00 2025-10-28 0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의 시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농협중앙회 산하의 단위농협(지역농협)들이 불법적으로 '은행'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금융인 지역농협이 1금융인 은행을 사실상 사칭하는 셈입니다. 
 
은행법에서는 한국은행이나 은행이 아닌 다른 사업자가 은행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금융소비자가 상호금융기관인 지역농협과 은행을 혼동·오인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당국은 은행법 위반 사항인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농협, 금융위 시정권고 무시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농협중앙회에 은행 명칭을 병기하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지역농협들은 조합과 현금인출기(ATM) 코너인 '365자동코너(Auto Bank)' 간판에 은행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앞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지적에 따라 농협중앙회는 지난 3월 당국 시정 권고를 반영해 브랜드 관리 준칙을 개정했고 같은 달 시행했습니다. 
 
농협중앙회 브랜드 관리 준칙 개정안에는 "조합의 브랜드 운용 체계는 '농·축협'을 사용해야 하며, 간판 등 사인물에 'Bank(뱅크)' 및 '은행'의 표현을 사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당초 365자동코너의 'Auto Bank'는 제외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이를 삭제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글로벌 사업 활성화 또는 농협 브랜드 가치 제고 등의 사유로 브랜드 운용 체계의 예외 적용이 필요한 경우 총괄 부서와 협의 후 브랜드위원회 의결을 통해 정한다"는 예외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 지역농협은 아직까지 '365자동코너(Auto Bank)'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ATM 기기 코너뿐만 아니라 조합 대표 간판에 'Auto Bank'라고 표기하고 있어 외국인이나 금융 이해도가 떨어지는 소비자들은 은행이라고 혼동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농협중앙회 산하의 지역농협들이 간판에 '은행(Bank)' 명칭을 병기하고 있다. 은행법에 따르면 한국은행이나 은행을 제외하고 은행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사진=뉴스토마토)
 
은행법 제14조에서는 '한국은행과 은행이 아닌 자는 그 상호 중에 은행이라는 문자를 사용하거나 그 업무를 표시할 때 은행업 또는 은행 업무라는 문자를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은행·은행업 또는 은행 업무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외국어 문자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당국도 농협은행과 조합의 차이를 잘 모르는 소비자의 경우 지역농협을 은행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협이 금융당국 시정권고를 이행하고 있지 않지만 별다른 제재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 유사업자들이 은행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된 바 있다"며 "관련 시정 조치는 금융위원회와 농협이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법상 지역농협이 은행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농협에 시정 권고를 내린 것"이라며 "은행 명칭을 농협처럼 사용하는 전례가 없는 데다 현실적 문제도 있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농협이 자율적으로 조치할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은행법에서 은행 명칭 사용을 규정하는 것은 은행 외 업권에서 은행을 사칭해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상호금융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됩니다. 새마을금고와 신협, 수협 등 다른 상호금융기관들은 농협처럼 은행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상호금융권 한 관계자는 "농협이 글로벌 사업 활성화 등의 예외 사유를 브랜드 내규에 넣은 것은 결국 자체 재량으로 은행 명칭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런 식이라면 다른 기관들도 (은행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습니다. 
 
지역농협들이 현금인출기(ATM) 기기뿐만 아니라 조합 대표 간판에도 '은행(Bank)' 명칭을 병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스토마토)
 
"소비자 오인·혼동 우려"
 
지역농협과 농협은행은 각각 상호금융과 1금융권으로 당국의 규제 강도와 예금자보호법 적용 여부가 서로 다릅니다. 농협은행의 경우 중앙회 산하의 농협금융지주 계열사입니다. 중앙회가 농협금융의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만 독립된 법인입니다. 은행 지점의 경우 지역농협처럼 별도 법인이 아니라 은행 본점의 정책을 따라야 합니다. 지역농협과 은행은 각자의 거래 정보를 서로 교환하지 않을뿐더러 예금과 적금, 대출 상품의 종류, 취급 기준, 업무 규정 등이 다릅니다. 
 
지역농협과 농협은행은 소속된 금융권이 다릅니다. 농협은행은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은행과 마찬가지로 제1금융권에 속합니다. 지역농협은 상호금융기관으로 신협·새마을금고·상호저축은행 등과 함께 제2금융권에 포함됩니다. 
 
예금자보호법의 경우 1금융권인 농협은행에만 적용됩니다. 2금융권인 지역농협은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자체 기금인 '농협 상호금융예금자보호기금'에 따라 1억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지역농협과 농협은행은 건전성도 극과 극입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농협중앙회 등 상호금융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농협 단위조합의 연체율은 5.07%로 나타났습니다. 
 
연체율은 2022년말 1.21%, 2023년 말 2.74%, 2024년 말 4.03%로 매년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금감원이 지난 8월 발표한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이 0.52%라는 점을 고려하면 10배에 이르는 수치입니다. 지난 9월 기준 연체율 10%가 넘는 농협 단위조합 수도 107개에 달합니다. 
 
서울 중구 충정로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본점.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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