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이 불러온 혼돈은 기후위기 대응 후퇴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일방적 독주 목록 중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구 생태계에 직접적 타격을 가할 만한 또 다른 뇌관이 있다. 트럼프는 지난 4월 중국의 핵심 광물 공급망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심해 광물자원 채굴 프로젝트의 인허가를 신속히 처리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심해저는 최근 들어 막대한 양의 니켈, 코발트, 망간 등 전기차 배터리와 청정에너지 기술의 핵심 원료가 매장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누구의 땅도 아니다. 국제사회가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통해 각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벗어난 공해의 해저와 그 자원을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나라나 기업도 독점적으로 소유, 개발할 수 없으며, 그 관리와 이익 분배도 국제해저기구(ISA)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현재, 상업적 심해 채굴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은 ‘불안한 균형’으로 요약된다. 프랑스, 독일 등 환경 보전을 중시하는 40여개국은 ‘모라토리엄(잠정 중단)’ 또는 ‘예방적 잠정 중단’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중국, 노르웨이 등 자원 확보에 적극적인 나라와 심해 채굴 전문 기업 TMC 등은 어서 빨리 상업 채굴 규정을 마련하라고 재촉한다. 이러한 대치 국면에서 트럼프가 국제적인 합의와 상관없이 상업 채굴에 나서겠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여서, 국제해저기구의 관리를 받지 않는다.
심해 채굴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우리가 ‘심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라는 과학적 성찰에 기반한다. 심해 채굴은 수십 톤짜리 거대 로봇이 수천 미터 해저면을 통째로 긁어내 지질학적으로 형성된 망간단괴를 빨아들이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흙먼지 구름이 해류를 타고 수백 킬로미터 퍼져나가 생태계를 파괴한다. 동시에 상층부에서 내려오는 유기물인 ‘바다 눈(marine snow)’을 차단해 바다의 탄소 저장 메커니즘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우려한다.
지난해에는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CCZ)의 망간단괴가 산소를 생산한다는 연구 결과가 <네이처 지구과학>에 실렸다. 지금까지 우리는 햇빛만이 산소를 만든다고 믿었다. 하지만 빛이 전혀 도달하지 않는 수심 4000~5000미터의 심해저에서, 우리가 ‘자원’으로만 간주했던 망간단괴가 마치 ‘자연의 배터리’처럼 작동하며 바닷물(H2O)을 전기 분해해 산소(O2)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심해저에 가라앉은 고래 사체(Whale falls)가 탄소를 저장하고 바다 생물에게 먹이를 공급한다는 사실을 1987년에야 ‘우연히’ 발견된 것만큼 놀라운 사실이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우리는 무엇을 파괴하는지도 모른 채 기초적인 생명 유지 시스템을 훼손하려는 것은 아닐까?
국제해저기구 관리하에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에서 탐사를 지속 중인 한국도 논란의 한복판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다. 지난 6월에는 고려아연이 전략 광물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TMC에 약 8500만달러(약 1100억원)를 투자해 논란이 일었다. 지난 7월 국제해저기구 이사회가 ‘TMC가 국제법을 준수했는지’에 대해 공식 조사에 나서기로 하면서 상황은 더 꼬여만 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광물 자원 확보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위기(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위기(심해 생태계 파괴)를 초래하는 것은 현명치 않다. 많은 경우, 우리는 ‘기술 혁신으로 위기를 해결했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기술로 돌려 막기’와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하버-보슈법으로 만든 질소비료가 토양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도시의 배기가스를 줄이려고 만든 전기차가 과도한 리튬 채굴로 남미의 소금사막을 파괴하는 것처럼 말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심해가 서부 개척지가 되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과학적 불확실성이 명확히 해소되고,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없다는 국제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상업적 심해 채굴을 중단하는 게 옳다. 한 번 연 판도라 상자는 닫히지 않으니까.
남종영 KAIST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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