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 문명과 라오인이야기)(31)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곳, 라오스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고향 같은 나라
노년층 향수를 불러오는 라오스 풍경
'호갱' 되기 싫은 한국인, 여행은 쉽지 않다
2025-11-17 06:00:00 2025-11-17 06:00:00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엣인에게 받았다는 질문이다. 하루키는 같은 제목의 여행 에세이에서 "나는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라오스의 풍경이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으며,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고 회상했다. 
 
라오스에서 만 13년 넘게 살아오고 10여년을 여행업 언저리에서 지내온 나 역시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받아왔고 결국 답을 찾기 위해 애써야 했다. 내가 했던 대답은 대단한 것을 기대하는 관광객들에게는 공격적으로 들렸을 수도 있고 반문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습니다. 고향에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라오스 관광청의 표어는 'Simply Beautiful(단순한 아름다움)'이었고, 그 뒤엔 'Touchable Laos(손끝으로 느껴지는 라오스)'가 등장했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자랑이 담겨 있지만, 뒤집어보면 대단하거나 압도하거나 화려한 면이 없다는 솔직한 고백일 수도 있다. 고향이 특별한 것은 주관적인 감정일 뿐, 객관적 기준과는 다를 수 있다. 
 
향수
 
우기에 큰물이 지자 나무에서 다이빙하는 라오스 아이들. (사진=김재용)
 
정지용 시인이 쓴 「향수」라는 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하는 곳이 라오스 농촌이다. 황소와 더불어 물소도 함께 있다는 점이 시와 다를 뿐이다. 실개천에서 발가벗고 물장난을 치다가 이방인을 보고 놀라 달아나는 아이들, 신작로를 걷거나 자전거를 나누어 타고 등하교하는 학생들, 자전거 뒤에 탄 동생이 페달을 밟는 언니에게 양산을 씌워주는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라오스 도시는 급격한 산업개발기를 겪은 한국의 노년층과 장년층에게 고단한 나날과 추억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들은 라오스가 한국의 60·70·80년대 중 언제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방세를 아끼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사글세 단칸방에서 자취하던 청년들, 어디서나 이루어지는 초저녁 술판에서 행인을 기꺼이 불러 함께 마시는 라오인의 인심을 만나다 보면 정말 고향에 온 듯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라오인들은 서양인을 '콘파랑'이라고 부른다. '콘'은 사람, '파랑'은 프랑스를 뜻한다. 초기 서양인 접촉이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에 서양인을 통칭하는 말이 되었다. 콘파랑들은 고조부나 증조부 시대의 건축양식이 루앙프라방이나 위양짠, 타켁 등에 그대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역사적 향수에 젖게 된다. 이러한 건물들은 게스트하우스, 호텔, 레스토랑, 카페, 마사지숍으로 여전히 성업 중이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복고풍이 아니라 현실 속 풍경이다. 서양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라오스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여행 패턴
 
압축 성장을 경험한 한국인의 여행 역시 압축적이다. 여행은 무엇보다 휴가 제도에 의해 강제된다. 한국인은 3박5일이나 4박6일이라는 시간 동안 위양짠, 왕위앙, 루앙프라방을 빠르게 둘러보고 돌아간다. 왕위앙에서는 값싸게 짚라인, 버기카, 카약, 긴꼬리배를 체험하는 것이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라오스 캄무완주 타켁루프로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한국 노년들. (사진=제국몽)
 
서양인은 자신들이 라오스에 전수한 요리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축복을 제대로 누리고 싶어한다. 자국에서 외식을 했을 때의 가격을 생각하면 라오스 레스토랑은 합리적인 정도가 아니라 거저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음먹고 외국으로 여행을 나왔으니 한 달 정도 머물며 본전을 뽑으려 한다. 급할 것이 전혀 없다. 서양 여행자들이 그물침대에 누워 한가롭게 책을 읽는 모습은 라오스에서 흔히 볼 수 풍경이다. 한국 관광객은 그물침대는 고사하고 고급 호텔 수영장에 발 한 번 담가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라오스는 한국인에게 맞는 여행지일까?
 
가성비나 가심비를 따지는 여행자에게 라오스는 맞지 않는다. 라오스는 태국보다 저개발 상태이니 물가가 더 싸야 한다는 기대가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코로나19 이후 라오스 통화인 낍의 가치가 반토막 나고 태국 바트가 강세여서 일부 물가가 역전된 영역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라오스가 태국보다 비싸다. 위양짠 도심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농카이나 80킬로미터 떨어진 태국 동북부 우돈타니로 라오스 주민들이 쇼핑을 가는 것만 봐도 이는 명확하다. 
 
라오스를 굳이 관광 대국 태국과 비교하는 이유는 문명권이 같아 언어·월력·풍속이 유사해 비교가 쉽기 때문이다. 라오인은 항상 태국을 빗대어 말하는 습관이 있다. 라오스는 태국의 많은 것을 모방한다. 과거 한일 관계와 비슷하다. 
 
여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비스다. 라오스에는 서비스업 종사자는 많지만 정작 서비스는 없다. 전채와 후식 순서가 뒤바뀌는 것은 따질 계제가 못되며, 아예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라오스가 태국을 따라 하는 것은 오로지 가격뿐이다. 시멘트나 일부 농산물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것을 수입해야 하는 경제 구조는 태국보다 비싼 가격을 정당화하는 좋은 명분이 된다. 가성비를 중시하고 호갱이 되는 것을 참기 어려워하는 한국인에게 라오스는 여행지로서 결격이 될 수 있다.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는 곳에 뭐하러 가?
 
여행에도 단계가 있는 듯하다. 관광에서 체험으로, 체험에서 휴양으로. 태국·베트남·중국 등 이웃국을 제외하면 라오스 여행자의 주류는 콘파랑들이다. 
 
라오스 여행을 개척한 초기 프론티어는 서양 암벽등반자들이었다. 왕위앙도 그러한 곳 중 하나였다. 카르스트 지형의 비경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캄무완주에 있는 타켁 방문을 권한다. 클라이머들이 머무는 숙소가 있는 지역에서는 600여개의 다양한 석회암 코스에 걸어서 도달할 수 있다. 초보자에게도 교육과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오지가 도시 가까이에 있다. 숙소에 따라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라오스 어느 지역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홈스테이에서는 모내기, 가을걷이, 전통적 고기잡이를 체험할 수 있다. 촌으로 가면 닭은 물론 돼지, 물소까지 풀어 키운다. 해방된 가축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인 라오스는 한국의 노년층에게 매력적이다. 길고 혹독한 겨울을 나기에 한 달 살이는 부족하니 한 철 살기가 좋다. 라오스는 무비자 30일, 태국은 90일이므로 번갈아 지낼 수 있다. 태국 북동부 이싼 지역은 메콩강의 다리만 건너면 갈 수 있다. 
 
생활비는 싸다. 현지인처럼 살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월 100달러 이하로 셋방을 구할 수 있다. 긴축해야 했던 유행병 시기에는 나는 임대료 포함 월 500달러 이하로도 살았다. 수영장과 조식까지 포함된 위양짠과 우돈타니의 4성급 '가성비' 호텔에서 재활과 집필을 위해 산적도 있다. 정보를 찾고 발품을 팔고 협상만 잘 한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우돈타니에는 연꽃의 바다라는 별명이 붙은 호수가 있어 건기 초가 되면 수련이 호수 전체를 덮는다. 그 장관을 보러 가는 일이 내게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12월이 다가온다. 나는 강남으로 돌아온 제비와 함께 분홍빛으로 물든 호수를 배로 미끄러져 나갈 것이다. 
 
'연꽃의 바다' 우돈타니에서 사진을 찍는 라오스 여성들. (사진=김진석)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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