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병보석 특혜와 편법 승계 논란을 정조준한 이른바 '이호진 방지법'이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들어갑니다. 범여권 의원들과 시민사회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형사소송법·보험업법 개정을 중심으로 '특권형 병보석 차단'과 '대주주 사익 편취 방지'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번 공청회에는 정준호·민병덕·김남근·박홍배 민주당 의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윤종오 진보당 의원을 비롯해 경제민주화시민연대, 한국투명성기구, 경제개혁연대, 금융정의연대, 민생경제연구소, 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 등 11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습니다.
병보석 요건 강화·보험사 내부거래 차단…"특권 사법 종식"
'이호진 방지법'을 대표발의할 예정인 정준호 의원은 "보험 가입자의 자산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승계 구도에 악용돼왔다"며 해당 개정안이 민생경제 안정과 자본시장 건전성을 위한 필수 입법임을 강조했습니다. 김남근 의원도 "총수 일가를 위해 주주의 피해를 당연시하던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스튜어드십 코드 점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후속 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호진 방지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병보석·형집행정지 요건을 강화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으로, 건강상 사유로 보석을 청구할 때 법무부 지정 의료기관의 진료기록과 임상소견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임의 의료기관 진단서로 장기 병보석을 허용했던 관행을 차단하고, 이 전 회장이 '간암 치료'를 이유로 8년 가까이 병보석 상태를 유지했던 전례를 막기 위한 취지입니다.
두 번째는 보험사의 자산운용 위탁 시 대주주가 60% 이상 지분을 가진 자산운용사·증권사·부동산투자회사(리츠)에 자산을 맡기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입니다. 보험계약자의 자산이 총수 일가의 승계·투자 구조에 전용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EB도 M&A도 총수 지시"…총수 리스크 실태 공개
18일 공청회에서 공개된 태광그룹 내부 문건에는 이호진 전 회장이 병보석 기간 중에도 승계용 주식 취득·계열사 이사회 소집 및 의결·흥국생명 채권 사태 대응·로비 문건 작성 등을 직접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미지=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
첫 발제를 맡은 이형철 경제민주화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을 대기업 중심 구조와 정경유착, 사법 특혜, 지배구조 규제의 공백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태광 내부에서 확보한 문건을 공개하며 이 전 회장이 법적으로 경영 참여가 제한된 시기에도 실질적 의사결정을 지속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문건에는 EB 발행을 '경영상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주장한 것과 달리, 이 전 회장이 계열사 이사회 소집과 의결을 직접 지시한 정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2022년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사태에서 상환 여부를 총수가 결정한 메시지, 승계와 관련한 계열사 주식 취득 지시 등도 확인돼 총수 의중이 공식 의사결정을 사실상 대체해온 구조가 드러났습니다. 이를 토대로 티투프라이빗에쿼티(T2PE)의 애경산업 인수와 흥국리츠운용의 흥국생명 빌딩 매입 등 최근 주요 경영 결정도 총수 뜻이 관철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반복된 사익 편취 구조…"지시와 관여까지 규제해야"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인 노종화 변호사는 이 전 회장의 형사처벌 이력과 반복된 사익 편취 구조를 핵심적으로 짚었습니다. 그는 이 전 회장이 2011년 비자금 조성, 계열사 지분 저가매수 등 횡령·배임·배임수재·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돼 2019년 징역형이 확정됐음에도, 구속 63일 만에 '간암 치료'를 이유로 집행정지를 받은 사례를 들며 병보석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계열사에 대한 김치·와인 강매로 총수 일가가 100% 소유한 티시스·메르뱅에 이익을 몰아준 구조는 공정위 제재로 확인된 전형적 사익 편취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EB 발행과 관련해서는
태광산업(003240)이 3185억원 규모의 사모증권 발행을 결의하면서도 자세한 자금 사용처와 인수자를 공개하지 않다가 문제가 제기된 후에야 한국투자증권을 인수자로 지정한 점을 비판했습니다. 이어 태광그룹이 T2PE를 앞세운 애경산업 인수와 흥국리츠운용의 흥국생명 빌딩 매입 과정에서 총수 2세에게 수익이 돌아가도록 구조가 설계된 정황을 제시했습니다.
병보석 남용을 막기 위한 입법 과제로 노 변호사는 법무부 지정 의료기관 진단서 제출, 반기별 재심사, 검찰의 건강 상태 확인 절차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공정거래법과 관련해서는 특수관계인의 '관여'까지 규제 대상으로 명확히 포함하고, 지원 주체·객체뿐만이 아니라 사익 편취를 통해 이익을 얻는 특수관계인에게까지 직접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성환 (사)L-ESG평가연구원 부원장은 "이번 개정안들이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소수주주 보호를 강화해 ESG 평가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보험업법 개정 역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와 윤리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특권층으로 인해 사법체계가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이호진 방지법 추진을 위해 모인 각계 시민단체들은 공동선언을 통해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정치권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며, 민생 안전망 확보를 위해 정치권·시민사회 기구 구성을 제안하는 등 경제 생태계의 투명성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특권형 병보석 차단과 대주주 사익편취 방지를 논의하기 위한 ‘경제정의 공정사회를 위한 형사소송법·보험업법 개정 공청회’가 열렸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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