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완화' 엇박자…리스크 놓고 '불붙는 논쟁'
'자체 조달' 미국…한국은 "금산분리 때문"
금융·제조업 연동 땐 소비자 위험도 커진다
2025-11-20 18:11:33 2025-11-20 18:35:11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인공지능(AI) 투자난을 이유로 금산분리 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정작 자본조달 여력은 크게 늘지 않고 총수 일가 지배력과 내부거래 위험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게다가 공정위원장이 사실상 반대 뜻을 내비치면서 부처 간 엇박자까지 드러나 논쟁은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금산분리'에서 한발 더…"공정거래법 손보자"
 
최태원 SK그룹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기업성장포럼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금산분리가 아니었다"며 "대규모 AI 투자를 감당할 새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밝혔습니다. 
 
최 회장은 글로벌 AI 투자 경쟁이 격화하는 국면에서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 펀드로도 부족하다. 1호에 이어 2호, 3호, 4호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공정거래법이 기업집단을 규제해왔지만 아무도 그게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대한민국 성장에 맞춘 새로운 규제의 틀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날 최 회장의 '금산분리 선 긋기'는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됩니다. 그는 지난 9월에도 "대기업이 첨단산업에 투자하려고 해도 금산분리 규제 탓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전날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의힘에 전달한 입법 건의안에도 '생산적 금융 활성화 방안'의 첫 항목으로 "지주회사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담겨 있습니다. 최 회장은 금산분리 완화 수준을 넘어서, 오히려 더 폭넓은 '기업집단 규제틀 전면 재설계'를 정부에 요구한 셈입니다.
 
'금산분리 완화'가 대규모 투자 문제의 해법으로 전면에 떠오면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금산분리 근본정신을 지키는 범위에서 일부 예외를 논의해볼 수 있다"며 완화를 시사했습니다.
 
이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대통령실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초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뒤, AI 산업에 한정해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금산분리 등 일부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기재부와 공정위 등 정부 부처는 지주회사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위한 논의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AI 투자난' 앞세웠지만…문제는 '지배구조'
 
금산분리 완화를 요구하는 재계 논리는 "글로벌 빅테크는 자체 펀드를 조성해 외부 투자금을 끌어오지만, 한국은 1982년 도입된 금산분리 원칙 탓에 이런 방식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구글·메타·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의 대규모 투자는 대부분 자체 영업현금흐름과 회사채 발행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일본 소프트뱅크처럼 외부 자금을 끌어오는 '펀드 기반' 투자는 예외에 가깝습니다. 소프트뱅크는 사실상 투자 전문 회사로, 제조업 기반의 국내 대기업 그룹과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금산분리를 완화해도 투자 여력이 크게 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는 자본 지출이 워낙 커서, 금융 자회사를 만들거나 계열사 안에 GP(운용사)를 둔다고 해서 조달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기는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오히려 글로벌 추세는 금산분리 완화가 아닌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급해 건설 비용 자체를 낮춰주는 방식입니다. 미국에는 여전히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막는 금산분리 원칙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금산분리는 애초 대기업이 금융기관을 사금고화하거나 총수 일가 승계에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대기업 부실이 금융권으로 번지는 '전이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강화됐습니다.
 
완화를 추진하면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와 내부거래 확대 등 '지배구조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금융사를 계열사 안에 둘 수 있게 되면 내부 펀드를 통해 특정 계열사 지분 확보나 승계 활용 여지가 생기고, 금융계열사 수익·현금흐름이 그룹 지배력 강화에 동원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금융소비자 자금이 제조업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금융회사가 고위험 반도체·AI 투자에 뛰어들면 소비자 예금과 보험료가 기업의 투자 위험에 직결됩니다. 제조업 투자 실패가 금융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금산분리는 금융 안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전날 <한겨레>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은 투자회사 설립이 아니라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며 "본업에 충실한 투자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금산분리 규제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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