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해된 밀가루·설탕 동맹…가격인하 신호탄?
검찰, 물가 위협한 담합 관계자 무더기 기소
진입 장벽 높아 …일부 기업 과점 구조 지속
업계 "인하 논의 조심스러워…상황 예의주시"
2026-02-02 16:14:12 2026-02-02 16:25:20
[뉴스토마토 이수정 기자·이혜지 수습기자] 검찰이 수년간 가격 담합으로 식재료 물가를 위협한 혐의로 설탕·밀가루 업체 관계자들을 기소하면서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원가 상승과 고환율을 앞세워 가격 인상을 정당화해온 기존 업계 논리가 흔들리며, 식재료 가격 급등의 책임이 기업으로 향하는 분위기입니다. 
 
2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국민 생활필수품 담합 사건을 지난해 9월부터 집중 수사해 법인 16곳과 개인 36명 등 총 52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습니다. 수사 대상에는 한국전력공사 입찰 담합 관련 업체들도 포함됐습니다.
 
검찰은 밀가루(대한제분·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설탕(CJ제일제당·삼양사), 전기 설비(효성·현대·엘에스·일진·제룡·동남·인텍·중전기조합) 등 민생과 밀접한 품목에서 수년간 약 10조원 규모의 담합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물가 상승을 초래해 서민경제를 위협한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밀가루 담합 규모는 5조9913억원, 설탕 3조2715억원, 한전 입찰 6776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실제 담합 기간 동안 실물 가격이 치솟은 정황도 확인됐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밀가루 가격은 담합 기간 최대 42.4%, 설탕 가격은 최대 66.7%까지 올랐습니다. 또한 일부 업체가 수사에 대비해 증거를 인멸한 정황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수십 년간 '담합→제재→구조 유지' 패턴 못 깨
 
근본적인 문제는 밀가루와 설탕 시장이 수십 년간 '과점→담합→제재→구조 유지'라는 반복된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부는 이런 담합 구조가 유지된 결과로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원재료 가격이 빵, 과자, 라면 등 가공식품 가격을 연쇄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서민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고 봤습니다. 
 
국내 밀가루 업계는 1990년대 후반부터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 등 주요 업체 8곳이 시장을 나눠 갖는 과점 구조가 유지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설탕 업계는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3사가 자리를 꿰차고 있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들의 담합을 처음으로 파악한 건 10년 전인 2006년이었습니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협회를 중심으로 가격 정보를 공유하며 동시 인상을 반복해온 것으로 보고 밀가루 업체에 총 434억원, 이듬해에는 설탕 업체에 총 102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표 마지막 단락은 검찰 조사 결과.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설탕 담합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하지만 과징금만으로 업계 관행을 흔들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상위 3~4개 업체가 시장점유율 90% 이상인 과점 구조가 유지된 겁니다. 제분과 제당 산업은 대규모 공장 설비와 물류 시스템 구축에 막대한 초기 자본이 필요한 데다, 밀과 원당을 전량 해외에서 수입하는 구조여서 기존 조달·유통 네트워크가 없는 신규 업체의 진입이 사실상 어려운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2020년대 들어서는 가격 인상 대신 제품 중량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이 확산되면서, 국제 밀 가격이 약 30% 하락한 시기에도 국내 판매가는 오히려 25%가량 상승하는 등 가격 경직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실제 설탕 가격은 지난 2024년 국제 원당 가격 하락 국면에서도 국내 판매가를 유지한 정황이 포착됐고, 공정위 역시 약 3조원 규모의 공급량 조절 담합 가능성을 두고 조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강경 대응에 업계 '초긴장'…"상황 주시하며 대응"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계속되자 제당·제분 업계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가격을 최전방에서 주물렀다는 의혹을 받는 대한제분은 이달부터 일부 밀가루 제품의 가격을 평균 4.6% 인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소비자 부담 완화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공정위와 검찰의 집중 수사에 따른 대응으로 분석됩니다.
 
관련 업계도 압박 속에서 가격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아직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매년 업계 애로 사항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검토돼왔다"며 "지난해에도 인하를 단행했고, 대한제분 등 일부 제분사는 가격을 낮춘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만 기업별로 사정이 다른 만큼 당장 구체적인 로드맵은 없지만, 시장 상황을 보며 긴밀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검찰은 향후에도 담합으로 시장경제를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검찰은 "앞으로 고기·주류 등 민생경제와 직결되는 다른 생활필수품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며 "담합 범행에 가담한 행위자에 대해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대형마트에 설탕 매대. (사진=뉴시스)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
이혜지 수습기자 ziz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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