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독과점 그림자'…피해는 '소비자 몫'
근절되지 않는 시장교란 행위…문제는 솜방망이 처벌
짬짜미 담합행위 '처벌 불이익'보다 누리는 '이익 막대'
'징벌적 손배' 수면 위로 "과징금 상향, 제재 효과 부족"
2026-02-25 15:05:16 2026-02-25 15:49:57
[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최근 유통 현장에서 일부 기업들이 시장지배력과 독과점 지위를 남용해 가격 담합과 폭리를 일삼으며 시장 가격을 왜곡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한 사실이 드러나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분·제당 기업들의 담합행위를 꼽을 수 있죠. 25일 업계와 수사당국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밀가루는 약 5조9913억원, 설탕은 약 3조2715억원 규모의 담합행위가 있었습니다. 담합 기간 동안 밀가루 가격은 최고 42.4%까지 인상됐으며, 설탕도 담합 발생 이전과 가격을 비교하면 최고 66.7%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한제분과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제분사 등 6개 기업은 약 5년에 걸쳐 국내 밀가루 가격의 변동 여부, 변동 폭과 그 시기 등을 합의해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한 혐의로 기소됐고, CJ제일제당과 대상, 삼양, 사조CPK 등 4개사는 전분당 가격 담합 의혹으로 수사당국의 강제수사가 진행 중이죠.
 
제분·제당 기업들의 조직적인 담합이 서민 물가 상승의 배후였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가운데 현행 담합 처벌 체계가 현실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이 주는 제재 효과는 미미한 반면, 담합행위로 인해 누리는 기업들의 이익은 막대해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정 기업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인상하거나 경쟁을 배제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종우 아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들의 담합행위는 결국 소비자가격 인상,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고 결국 그 비용 부담은 산업 생태계 전반에 전가되는 구조적 문제인 만큼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제재 불이익보다 범죄이익 커
 
현행 독과점 기업 담합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 효과와 적정성에 문제를 지적하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담합으로 인한 공정거래법위반죄의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그칩니다. 기업 입장에선 불법행위로 얻는 이익이 제재보다 크기 때문에 담합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죠. 기업 담합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형벌 규정이 있지만 실제 적용 사례는 찾기 힘들고, 주로 과징금을 통해 제재해 왔지만 부과 수준이 낮아 억지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형벌 폐지 대상인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서는 과징금 상한을 현행 관련 매출액의 6%에서 20%로 대폭 상향하는 안을 검토 중입니다. 유럽연합과 일본 등 해외 법제와 비교하면 국내 과징금 상한이 낮아 유사한 위반행위에 비해 제재 강도가 약하다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번에 공정위가 과징금 상한을 해외 주요국 수준으로 상향해 제재 실효성을 높이고, 형벌 폐지 이후에도 법 위반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정혜 법무법인 서리풀 변호사는 "현행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은 기업이 불법행위로 얻는 이익에 비해 제재 수준이 현저히 낮아 실질적인 억지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변호사는 "과징금 상한 상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 가능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적극 활용해 피해자 구제와 사적 집행을 강화해야 한다"며 "특히 중대하고 반복적인 경성 카르텔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선별적으로 유지하고, 실제 과징금 부과 수준을 위반행위의 중대성에 상응하도록 높이는 등 형벌·과징금·손해배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종합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밀가루. (사진=뉴시스)
 
과점 구조 악용해 '가격 인상'…영업이익 '급증'
 
지난 9일 국세청은 먹거리, 생필품 등 장바구니 물가 불안을 야기하는 탈세자를 대상으로 4차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독과점 업체에 대해 1785억원을 추징했습니다. 적발된 14개 독과점 기업들의 총 탈루 추정 금액은 약 5000억원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독과점을 이용해 가격을 인상해 폭리를 취한 기업으로 샘표, 빙그레, 대한제분, 오비맥주 등이었습니다.
 
샘표의 경우 주요 원재료의 지속적인 국제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주요 제품 판매가격을 10.8% 인상했습니다. 그 결과 2023년 이후 수십억원에 머물러 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3분기 무려 400% 이상 폭증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20년 411억원에 달했던 영업이익은 2024년 58억원으로 급감했습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영업이익은 계속 감소세를 기록했죠. 하지만 가격 인상을 단행한 지난해에는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21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419.6% 급증했습니다.
 
대한제분은 탈루 혐의 금액만 1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한제분은 다른 업체들과 사다리 타기를 통해 가격 인상 순서를 정하는 식으로 담합해 수년간 제품 가격을 44.5% 올렸죠. 다른 담합 참여 업체들과 거짓 계산서를 수수하는 방식으로 원재료 매입 단가를 조작했고, 담합으로 거둔 이익 약 800억원을 축소 신고한 사실도 적발됐습니다.
 
대한제분은 2022년부터 200억원대에서 433억원으로 영업이익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73.3% 증가한 것입니다. 이 회사는 영업이익 증가세를 유지하며 2024년에는 전년 동기 대비 31.8% 증가한 72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대한제분은 사주 일가에게 인건비 약 70억원을 과다 지급하고, 사주 일가의 장례비와 사주가 소유한 고급 스포츠카의 수리비와 유지관리비를 회삿돈으로 대납해 논란이 일고 있죠.
 
이 교수는 "이번에 적발된 제분, 제당업계만 담합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들 기업들이 오랜 기간 짬짜미를 통해 부당이익을 향유하고 건전한 시장 경쟁 구도를 심각하게 훼손한 만큼 다른 업종도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교수는 "독과점 기업들이 신규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고 가격 인상을 통해 폭리를 취하는 동안 서민경제는 고물가의 직격탄을 맞았다"며 "소비 여력이 위축되고 시장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이중고가 지속돼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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