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한 뼘의 모래 위에서 삶을 이어가는 '쇠제비갈매기'
2026-05-14 15:03:50 2026-05-14 16:49:31
우리 갯벌과 강가에서 점점 보기 어려워지는 귀한 손님, 쇠제비갈매기의 치열한 삶은 가정의 달인 5월을 오히려 슬프게 만듭니다. 인천공항이 들어서기 시작한 2000년 이전, 인천 주변의 마른 갯벌은 5월부터 번식을 시작하는 쇠제비갈매기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습니다. 특히 영종도 갯벌은 조심해서 걷지 않으면 보호색으로 위장된 알을 밟을 정도로 밀도가 높았지요. 하지만 한반도 서남해안 곳곳의 마른 갯벌이 사라지자 그 많던 쇠제비갈매기들은 대부분 이 땅을 떠나버렸습니다. 급기야 환경부는 2022년 쇠제비갈매기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이 땅을 포기한 쇠제비갈매기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기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쇠제비갈매기 부부가 충남 당진시 갯벌에서 새끼들을 기르고 있다.
 
쇠제비갈매기는 이름처럼 갈매기 중 가장 작습니다. 몸길이 약 24cm, 날개폭 53cm 정도의 가냘픈 몸이지만 생김새는 아주 야무집니다. 번식기가 되면 머리 위에 검은 모자를 쓴 듯 깃털이 돋고, 이마에는 선명한 하얀 'V' 자 무늬가 나타납니다. 가장 큰 특징은 노란 부리 끝에 살짝 묻은 검은 점과 앙증맞은 주황색 다리입니다. 작지만 길고 날렵한 날개 덕분에 비행 실력은 일품입니다. 주로 작은 물고기나 새우를 사냥하는데, 수면으로 정지비행(호버링)을 하다 기회를 잡으면 그대로 수직 낙하하는 모습은 카메라로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역동적입니다.
 
이들은 수십, 수백 마리씩 모여서 알을 낳는 '집단 번식'을 합니다. 따로 둥지를 틀지 않고 맨땅이나 자갈밭에 알을 낳기에 천적에게 노출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까마귀나 맹금류가 나타나면 다 같이 날아올라 '집단 폭격'으로 공동 방어를 펼칩니다. 하지만 비행 속도가 압도적인 맹금류 '새호리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쇠제비갈매기를 낚아챕니다. 날카로운 발톱에 매달려 가는 동료를 보며 영역 밖까지 쫓아가 저항하는 쇠제비갈매기들을 지켜보노라면, 새호리기가 한없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육추 과정은 눈물겹습니다. 초여름 뙤약볕 아래 지면 온도가 50도를 넘어서면 어미는 강물이나 바닷물에 배를 적셔와 알과 새끼를 식혀주는 이른바 '배치기' 기술을 선보입니다. 아빠가 부지런히 물고기를 물어 나르면 엄마는 온몸으로 그늘을 만듭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물고기를 한입에 삼키려 애쓰는 모습은 생명의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새끼가 부화하면 어미는 미련 없이 둥지를 버리고 물가로 이동합니다. 새끼들은 그곳에서 사냥술을 배우며, 위급 상황 시 자갈이나 조개껍데기 속으로 바짝 엎드려 위장색 뒤로 숨어버립니다.
 
쇠제비갈매기 수컷이 갯골에서 새끼에게 먹일 작은 물고기를 찾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생존 전략은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서해안 번식지를 잃고 낙동강 상류 안동호까지 밀려 올라온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바닷새가 민물 호수까지 찾아든 속사정은 절박합니다.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져야 드러나는 모래섬은 여름 장마나 갑작스러운 방류 한 번에 새끼들의 무덤이 되기도 합니다. 인공 모래섬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습니다.
 
육추가 끝나는 7, 8월에 갯벌의 염습지는 뜨거운 증기를 내뿜습니다. 그 열기를 견디며 비행 연습에 매진하는 어린 새들을 보면, 앞으로 떠나야 할 7000여km의 여정이 벌써 걱정됩니다. 필리핀과 호주를 지나 뉴질랜드까지 날아가는 이 작은 비행사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히 새 한 마리가 아니라, 그들이 알을 품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입니다. 쇠제비갈매기가 사라진 갯벌은 결국 인간에게도 침묵의 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의 달 5월이 우리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진정으로 행복한 달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글·사진=김연수 생태칼럼니스트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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