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중앙노동위원회가 직접 생산 공정뿐 아니라 구내식당과 통근버스 운영 등 간접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했습니다. 형식적 계약관계보다 실제 ‘노동조건’을 지배하고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따져 사용자성을 판단한 것으로,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기준을 한층 구체화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 4월13일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원청 교섭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경남지부)
16일 노동계와 업계에 따르면 중노위는
한화오션(042660)이 제기한 교섭 요구 노동조합 확정 공고 관련 재심 신청을 기각하고 초심 결정을 유지했습니다. 중노위는 “웰리브지회가 교섭을 요구한 산업안전·작업환경 의제에 대해 조합원이 일하는 조리실, 세탁실, 통근버스 등 작업장 노후 시설 개선은 소유자인 한화오션의 협조와 승인없이 하청업체가 단독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원청이 ‘자산 소유자’로서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구체적인 결정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앞서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 직후인 지난 3월10일 하청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자 한화오션은 조선하청지회만 교섭 대상에 포함하고 웰리브지회는 제외했습니다. 이에 웰리브지회가 이의를 제기해 경남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웰리브지회까지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는 결정을 받아냈습니다. 당시 경남지노위는 사용자성 여부를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으나, 웰리브지회는 이번 중노위 결정으로 급식과 통근버스 운영, 시설관리 환경 개선 등에 대해 원청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중노위 결정은 원·하청 구조 고착화로 발생한 ‘노동 기본권 사각지대’를 메우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원청 사업장 안에서 일할 경우 노동조건을 지배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당연히 원청”이라며 “하청 사업자가 실질적으로 본인 판단과 위험을 감수하며 독자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하청 구조의 ‘본질적 한계’로 인해 노동조건 결정권과 영리 창출 수단은 사실상 ‘원청’에 귀속돼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어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노동조건 권리 사각지대를 분명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번에 메운 것으로, 하청 사업자에게 고용돼 있다는 형식만으로 원청이 교섭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던 과거가 ‘잘못된 것’”이라며 “노사관계 실체에 좀 더 접근한 판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경남 거제 한화오션 본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하청 노동자가 일하는 공간과 설비의 소유권이 원청에 있어 실질적 사용자성이 인정된 유사 사례는 산업계 전반에서 잇따르고 있습니다. 하청업체 대표에게 작업 환경 개선을 요구해도 고칠 권한이 없는 만큼, 설비 주인인 원청이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전날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구내식당과 공장 보안·경비 등 10개 하청 노조가 요구한 안전 확보 의제와 관련해 시설 점유권을 쥔
현대차(005380)의 교섭 의무를 인정했습니다. 건설업계 역시 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가 원청인 중흥건설과 중흥토건을 상대로 낸 요구에서, 작업 중 발생하는 위험 요인 제거나 안전설비 설치 등은 하청인 크레인 임대업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오직 원청 건설사만이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고 지난 4일 중노위는 판단했습니다. 물류업계에서도 서브터미널의 레일 설비나 환기 및 냉난방 시설, 상하차 작업 환경 등은 대리점주가 아닌 원청인
CJ대한통운(000120) 자산인 만큼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원청이 택배기사들과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 판정이 나온 바 있습니다.
한화오션은 “중노위로부터 결과에 대해서는 문자로 통보받았다”며 “결정문 등을 통해 면밀한 법적 검토 후 회사 입장을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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