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지 불과 10일 만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민간 상선을 겨냥한 무력 도발이 연이어 발생하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관문이 다시 가로막혔습니다. 양국이 60일 휴전 합의 이후 후속 협상을 진행하는 와중에 공습과 재반격을 주고받으면서 지정학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적 임무 완수 가능성까지 시사한 가운데, 해상 보안 위협이 급격히 치솟으며 해운업계의 불안감이 다시 확산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한 선박. (사진=연합뉴스)
28일 로이터와 AP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파나마 선적의 30만재화중량톤수(DW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키쿠호’가 호르무즈 해협 남쪽 항로를 통과하던 중 발사체 공격을 받았습니다. 해양 보안 업체 뱅가드와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 조사 결과, 선박 함교 일부가 파손됐으나 승무원 전원은 무사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피격 당시 해당 선박은 200만배럴의 원유를 싣고 있었으며 다행히 해양 오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태는 지난 25일 싱가포르 선적 컨테이너선 ‘에버 러블리호’가 무인기(드론)에 피격된 이후 양측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불거졌습니다. 미국 중부사령부가 상선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26일 이란 남부 지역의 미사일 및 드론 저장소 등 해안 진지를 공습하자, 곧바로 민간 유조선 피격 사건이 뒤따랐습니다. 유조선 공격이 이란의 소행인지 여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황상 미국의 공습에 대한 이란의 보복일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연이은 상선 피격으로 IMO는 아라비아만에 발이 묶인 선박 600여척과 1만1000여명의 선원을 남쪽 항로로 탈출시키려던 대피 작전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다국적 해군 연합체가 운영하는 합동해양정보센터(JMIC)는 호르무즈 해협의 보안 위협 수준을 ‘보통’에서 ‘상당함’으로 즉각 상향 조정했습니다. JMIC는 기뢰 매설 가능성과 해군 전력 밀집에 따른 혼잡을 경고하며 통항로 확보를 위한 해군의 초단파(VHF) 호출에 대비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한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종전 MOU가 호르무즈 해협 관리 문제를 명확히 매듭짓지 못했다는 점이 작용했습니다. 당초 양측은 60일간 상선의 안전 통항을 보장하고 향후 이란과 오만이 해협의 ‘미래 관리 방안’을 함께 정립하기로 했으나,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통행료 징수와 해협 통제권 강화를 위해 자국 영해인 ‘북쪽 항로’ 이용을 다시 강제하고 나섰습니다. 선사들이 나포를 피하고자 미국과 IMO가 대피로로 설정한 오만 연안의 ‘남쪽 항로’를 주로 이용하자, 이란은 이 구간을 지나던 에버 러블리호와 키쿠호를 연이어 타격한 것입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란이 통행료 징수를 위해 무력 도발을 감행해 남쪽 항로 진입을 차단하고 자국의 사전 허가가 필요한 북쪽 항로 이용을 강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안전이 확실히 담보되지 않는 한 선사들이 해협 통항 자체를 보류하는 물류 병목 사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상 물류의 마비는 보험 시장의 경색으로 이어질 것으로 관측됩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6월 중순 휴전 협정 직후 선박 가액의 최고 5%까지 치솟았던 ‘전쟁 위험 보험료’가 2%대까지 하락했으나 최근 피격 사태로 완화 흐름에 급제동이 걸렸습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분쟁 지역 운항을 위해 필수적인 리스크 평가사와 보험사, 용선주의 승인 절차가 사실상 멈춰 섰다”며 “해운업계 전반의 리스크 프리미엄 상승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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