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립·은둔 청년 부모의 마음을 아십니까
2025-03-27 06:00:00 2025-03-27 06:00:00
오랜만에 친구들과 등산을 가는데 한 친구가 중간에 앉아 쉴 때마다 한숨을 푹푹 내쉬곤 합니다. 체력이 좋아 남보다 앞장서 빨리 올라가는데도 한숨을 쉬니 궁금해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다시 길게 한숨 쉬며 ‘은퇴한 친구들이 부러워. 나는 90세까지 일해야 할 것 같아’라고 답합니다. 나이가 30대 후반인 아들과 딸 둘을 두었는데 둘 다 아무 일 안 하고 논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각자 방에 틀어박혀 있어 밥 먹을 때만 나와 본다고 하네요. 혼자 방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공부하거나 컴퓨터를 한다고 합니다. 농담으로 야동을 보는 것이 아니냐 했더니 히죽 웃으며 야동이라도 보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연애도 안 하고 친구도 안 만나며 일절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꼴을 보기가 답답해 주말이면 집을 나와 산에 간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다행히 치과의사라 원하면 계속 일할 수 있습니다. 돈 버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늙어서도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계속 일해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합니다. 무엇을 하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자기가 죽고 난 후에도 아이들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돈을 모아두는 것이 목표라 합니다. 노는 성인 자녀들을 위해 늙어서도 일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누가 이해나 할까요.
 
그 친구의 아이들은 공부를 잘했습니다. 아들은 유명 의대를 나와 일류 병원에서 수련의를 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전공의로 선택되지 못해 좌절하고 그 이후 두문불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딸은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건축과를 졸업하고 명문대의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을 딴 재원입니다. 역시 본인이 원하는 로펌의 취업에 실패하자 집에 틀어박혀 있게 되었습니다.
 
둘 다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엄친아로 자랄 때는 주변에서 모두가 부러워했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사춘기에 공부 안 한 거나 쌈박질하며 사고 칠 때도 일절 부모 속 썩이지 않고 착실하게 공부만 하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자랑거리였던 자녀들이 장성해서 골칫거리가 되었으니 그 부모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고 억장이 무너질 겁니다. 세상에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웃음이 나오겠습니까. 어디서 무엇을 하건 한숨밖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교수라 청년들을 잘 아니 한번 만나 진로 상담을 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외과의사로 재직하다 은퇴하고 필리핀에서 의료 선교를 하는 친구는 의사 아들이 자기와 같이 필리핀에 가서 봉사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친구는 딸이 건축학과 출신의 변호사이니 자기네 회사 일을 봐주면 좋을 것 같다는 말도 했습니다. 모두 다 거절했습니다.
 
자녀들이 몇 년 동안 식구 말고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아 대인기피증이 심하다고 합니다. 또 친구의 부인은 자기 아이들의 초라한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동정을 받는 것으로 받아들이더군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엄마 마음에 자기의 금쪽 자녀들이 남에게 낙오자로 취급받으며 구설에 오르내리는 것이 견디기 힘들 겁니다.
 
고립되어 은둔 생활을 하는 청년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무 의욕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어떤 청년들은 너무 욕심이 많아 조급하게 코인 투자로 돈을 벌고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사려고 애를 쓰는데 어떤 청년들은 욕심이 없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은둔하고 있으니까요.
 
현재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는 청년이 수십만명에 이릅니다. 지난해 국무조정실이 청년의 삶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거의 집에만 있는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5.2%로 2022년 2.4%에서 2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립·은둔 생활을 하는 이유로는 ‘취업의 어려움’(32.8%), ‘인간관계 어려움’(11.1%), ‘학업 중단’(9.7%)이 꼽혔습니다.
 
이 청년들을 어떻게 해야 사회로 복귀시킬지는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인구 감소 시대에 이 정도의 인적 자원이 사장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손실입니다. 하지만, 고립·은둔 청년들을 집 밖에 나와 사회생활을 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단순히 예산과 인력만 투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가 섬세하게 청년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마음의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어린 아기가 걸음마 배우듯이 아주 조심스럽게 사회를 향해 걸어 나오도록 안내해주어야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얼치기로 개입하면 오히려 문제만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 친구를 만나도 더 이상 자녀에 관해 묻거나 도움을 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같이 걸어줄 뿐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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