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의 중도보수주의 노선이 쟁점이 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논하고 있다. 무릇 인간의 인식은 개념(명칭)과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 합쳐져 형성된다. 개념(명칭)은 그대로 있어도 그 내용은 시대 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바뀐다. 뿐만 아니라 개념은 대립되는 개념에 의해 그 의미가 변한다. 중도보수주의를 시공간적 개념의 변화를 고려하는 개념사(槪念史)적 고찰로 그 의의를 살펴보자.
보수주의는 급진 개혁에 반대해 사회개혁은 전통을 보존하면서 추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급진 개혁에 반대하는 개념에서 시작했다.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1790년 11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썼는데, 버크는 이 책에서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초기 1년간의 사태 전개로 혁명으로 인한 개혁이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초래하고 군사적 독재로 종결될 것으로 예측했다. “신중함, 숙고, 그리고 예견력이 100년에 걸쳐 세운 것을, 분노와 광폭함이 반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폐해로 만들 것이다.” 보수주의의 다른 명칭은 우파이다. 우파-좌파 분류는 프랑스혁명 시절 제헌의회에 이어 1791년에 수립된 입법회의에서 의원들의 자리 배치에서 나왔다. 의장 오른쪽에 보수 왕당파가 앉았고, 중간에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중도파, 왼쪽에 급진 공화파가 앉았다. 프랑스혁명에 대한 대중들이 갖는 이미지는 단두대로 상징되는 공포정치다. 혁명이 진행되면서 점차 의회의 주도권은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급진 공화파가 잡는다. 1792년 9월에 루이 16세를 폐위시키고 최초로 공화국을 수립한다. 공화국을 이끄는 국민 공회에서 왕을 처형하고 혁명을 진전시켜 평등 사회를 만들려는 급진 좌파와 이에 반대하는 온건파가 대립한다. 급진 좌파의 추진한 개혁 중 하나는 재산에 따른 제한선거를 철폐하고 보통선거를 실시하는 것이다. 전통적 보수주의자는 보통선거를 반대한다. 버크는 말한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데 재산과 능력을 대표하지 않는다면 적당하고 적절한 국가 대표라 할 수 없다.”
루이 16세를 처형한 뒤 권력을 장악한 급진 좌파는 공안위원회를 구성하여 공포정치(1793~1794년)를 폈다. 공포정치로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이 중에 4~5만명이 처형된다. 공포정치에 질린 반대파들이 단결하여 급진 좌파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를 끌어내 단두대로 보낸다. 이후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혼란을 수습하고 권력을 잡게 된다. 버크가 예측한 대로였다. 이때부터 좌파는 혁명을 위해 공포정치를 자행하는 극단주의로 인식된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혁명 이전 상태로 돌아가 왕정 복고시대(1815~1830년)가 되면서 보수주의가 권력을 잡는다. 1848년에는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제가 다시 들어선다. 2월 혁명은 빠른 시일내에 유럽으로 퍼졌으나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18개월 내에 다시 이전 체제로 돌아갔다. 1848년 혁명은 하층 무산계급이 주도하여 1789년 혁명에서 못 이룬 평등을 실현하려 했다. 1789년 혁명은 자유와 함께 평등을 내세웠지만 평등은 실현되지 않았다. 참정권이 재산에 의해 제한되어 무산계급은 현실 정치에서 소외됐다. 하층 무산계급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봉기했으나 상류 부르주아들은 혁명보다 질서를 선택하여 보수주의자와 손잡고 혁명을 무산시켰다. 한편 1848년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여 사회주의 혁명으로 무산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2월 혁명과 『공산당 선언』으로 좌파는 무산자 혁명으로 유토피아를 구현하려는 사회주의자로 인식됐다. 18세기에 보수주의는 중산층의 자유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었다면 19세기에는 사회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었다.
2월 혁명은 좌절됐지만 프랑스에서는 보통선거가 실시됐다. 이후 보통선거는 유럽으로 점차 확산하면서 정치 지형을 바꿨다. 독일에서는 1863년 노동계급을 대변하는 사민당이 탄생했다. 공업화가 진전되고 보통선거가 실시되면서 독일에서는 사민당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부상한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통일되는 19세기 후반에 보수주의는 민족주의로 발전하면서 혁명을 막고 체제를 안정시키려는 이념으로 발전한다. 1871년 독일통일에 공헌한 비스마르크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보수주의자이다. 그는 통일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반(反)사회주의 법으로 사회주의자를 탄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사회보장법으로 복지정책(연금, 의료보험 등)을 실시하여 무산계급이 사민당으로 기우는 것을 막았다. 동시대 영국 보수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디즈레일리는 1867년 도시노동자에게 선거권을 주는 보통선거를 단행한다.
사민당 내에서는 마르크스 이론(노동자 궁핍화와 중산층의 해체 등)을 비판한 베른슈타인의 수정 사회주의 노선이 점차 지지를 받으며 혁명 노선을 포기한다. 노동자 요구 사항을 혁명이 아닌 선거로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수정주의에 불만을 가졌던 사민당 내 급진파는 1918년에 공산당을 창당한다. 사민당은 1921년 강령에서 마르크스 역사관을 포기하면서 국민 정당으로 변신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사민당은 다수당으로 부상하여 진보적 사상(노동3권 등)이 구현된 바이마르헌법 제정을 주도했으나 경제 위기로 야당으로 물러섰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보수정당들은 극우 정당인 나치와 제휴했다. 공동의 적인 공산당과 싸우기 위해서이다. 보수정당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잡은 나치는 1933년 2월 의사당 방화 사건의 배후로 공산당을 지목하여 불법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정당들을 하나씩 폭력적으로 해산시키고 마침내 보수정당마저 삼켜버렸다. 일당독재를 확립한 나치 폭정은 유태인 대량 학살로 정점을 이루다가 패전으로 종식된다. 한편 1956년 2월 흐루시초프는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스탈린이 저지른 무고한 투옥과 학살을 폭로했다. 파시즘 몰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스탈린 공산주의도 파시즘 못지않은 전체주의임이 드러났다. 이후 자유주의 국가의 대중들은 좌파 극단주의(스탈린 공산주의)도 우파 극단주의(파시즘)도 권력을 쥐면 국가폭력으로 변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보수주의자들은 기독민주연합(기민당)을 창당했고 사민당은 재건됐다. 이 두 정당이 전후 독일 정치를 이끌었다. 전후 기독민주연합의 아데나워 내각이 집권하여 국가를 재건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다. 당시의 경제장관 에르하르트는 ‘라인강의 기적’을 진두지휘하여 ‘사회적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자유시장을 존중하되 독과점 방지 같은 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데 정부가 적극 개입하는 것이고, 여기에 약자를 위한 복지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독일은 기민당이 집권한 이 시기(1949-1969)에 비스마르크 시기부터 도입한 복지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한편 80년대의 영국과 미국의 보수주의는 자유주의와 결합하여 신자유주의로 발전된다. 냉전 이후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개입하여 경제를 운영하는 케인즈의 경제학이 지배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맡기는 ‘자유 시장경제’를 옹호했다. 80년대 미국 레이건 공화당과 영국 대처 보수당은 신자유주의를 실천했다.
이상의 보수주의 개념사로 고찰해보면 한국의 보수-진보 개념은 유럽의 그것과 같으면서 다르다. 민주당을 좌파(진보) 정당이라 말하지만 이는 국민의힘에 대한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민주당이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정당으로 창당하지 않았으니 좌파 정당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소위 한국의 진보정당도 독일에 갖다 놓으면 보수정당으로 인식될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시장경제와 복지를 동시에 강조하는 독일 기민당과 유사하고 국민의힘은 미국 공화당과 유사하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은 보수-좌파로 국민의힘은 보수-우파로 분류해야 한다. 보수우파 국민의힘은 기로에 서 있다. 1930년대 독일 보수정당처럼 극우와 연합하여 몰락하는 길로 간 것을 교훈으로 삼아 선동적 구호를 지양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정책으로 보수주의로 거듭나야 한다. 비스마르크는 사회복지를 추진했고 디즈레일리는 보통선거를 받아들여 진보적 정책을 선점해 진보주의자가 설 자리를 좁히면서 국내 정치를 안정시켰다. 반대로 국민의힘 은 민주당의 중도보수주의로 극우로 몰리면서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좌우에 관계 없이 보수주의는 신중한 정책 추진으로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신중한 검토와 논의 없이 추진된 정책으로 오랫동안 발전시킨 시스템(예를 들면 의료 시스템, R&D 시스템 등)을 무너뜨리는 것은 보수주의 방식이 아니다. 버크가 비판했던 급진주의 방식이다. 아데나워 보수정권이 선거 때마다 내건 구호가 “실험 없는 안정된 정치”와 “모든 사람을 위한 풍요”였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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