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최대·최악으로 기록된 이번 대형산불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의 부주의 때문이다, 소나무 때문이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등 다양한 분석‘들’이 제기된다. 이 중에 무엇이 진짜 원인인지 논쟁은 무의미하다. 대형산불은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원인‘들’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먼저 불씨가 있어야 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낙뢰나 마찰 같은 자연현상으로 인한 산불은 거의 없고, 대부분 사람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다.
불씨는 연료가 있어야만 불이 된다. 산불의 연료는 나무와 낙엽이다. 소나무는 활엽수와는 달리 겨울과 봄에도 가지에 잎이 붙어 있어, 지표층(낙엽층)에서만 타던 산불이 나무 윗부분(수관층)까지 옮겨붙으면서 불똥이 날아가는 비화로 확산할 수 있다. 소나무의 잎과 줄기에는 불에 잘 타는 정유 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산불의 기세와 확산 속도도 더욱 커진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소나무는 활엽수에 비해 1.4배 더 뜨겁게 타고 불이 지속되는 시간도 2.4배 더 길다.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림이 산불 확산 원인으로 지적되는 이유다. 2020년 기준 전국 산림 면적 중 침엽수림이 36.9%로 가장 넓고, 활엽수림이 31.8%, 혼효림은 26.5%다. 경북(41.8%)과 경남(44.8%)의 침엽수림 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기후변화로 인해 한반도가 산불 발생에 취약한 기상과 산림 조건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겨울과 봄의 연평균 기온이 높아지고 강수량이 줄면서 상대습도가 감소했다. 여기에 3월 중하순에 이례적으로 따듯한 기온과 낮은 습도가 산림을 건조하게 만들어 대형산불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습도는 산불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공기 중 실효습도가 40% 이하로 떨어지면 낙엽의 수분 함유량이 10% 정도로 낮아진다. 수분 함유량이 15% 이하인 낙엽은 35%인 낙엽과 비교했을 때 발화율이 약 25배 높아진다.
바람은 산불의 확산 속도와 범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이번 대형산불이 진압되지 않고 계속 인근 지역으로 급속히 번진 것은 ‘태풍급’ 강풍 때문이었다. 지난 20년간 영남 지역의 3월(1~25일) 강풍특보 발표 횟수를 보면, 20년 전(2005~2010년) 1~9회에 불과했던 것이 2021~2025년에는 6~24회에 달했다. 지난해와 올해 3월 특보 횟수는 24회와 23회로 지난 20년 중 가장 많았다. 여기에 경사가 가파르고 골짜기가 많은 경북 지역의 지형 조건도 산불의 확산 속도를 높였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30도 경사가 있는 지형에 초속 6m의 바람이 불 때 바람이 없는 평지보다 화재 확산 속도가 최대 78배까지 증가한다.
산불은 이제 연중화·대형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특정 시기에 집중됐던 산불이 기후변화 영향으로 최근에는 연중화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1990년대 연간 112일 발생했던 산불이 최근 3년(2020~2022년)은 204일로 92일 증가했다. 기후변화로 겨울철 기온이 오르면서 겨울철 산불 발생 건수도 늘고 있다. 12~1월 평균 산불 건수는 1990년대 연간 34건에서 2000년대 57건으로, 최근 5년 동안에는 82건까지 늘었다. 또한 2022년과 올해 산불에서 확인한 것처럼 산불의 규모가 전례 없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며 기후변화가 가속화될수록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실수로 산불을 내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으니…,” 산림청이 최근 보낸 안전 안내 문자 중 일부 문구다. 경고나 협박처럼 느껴지는 이런 문자가 아니더라도 불씨가 되는 사람의 실수는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산불의 연료가 되는 나무와 숲의 복원도 어려운 과제다. 산림청의 ‘숲가꾸기’ 사업에 대한 비판을 넘어 산불 예방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탄소 흡수원과 생물다양성 측면, 지역 공동체와 주민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후 논의를 거쳐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훨씬 더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다. 인간에 의해 발생한 기후변화 때문에 산불에 취약해지는 환경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기후위기와 대형산불로 집과 삶의 터전을 잃고 몸과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대형 재난·재해 시 재난 취약계층인 노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재난 대피 방안을 포함한 재난 대응 시스템 재구축도 시급하다. 무엇보다 대형산불과 같은 기후 재난의 책임이 ‘기후 악당’ 국가인 한국 정부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대형산불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기후 재난이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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