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생존을 위한 음식 섭취를 넘어, 맛을 즐기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는 점이다. 음식(식품)의 1차적 기능은 생명과 건강 유지를 위한 영양학적 역할에 있다. 그러나 1차적 기능이 충족된 이후, 인류는 오랜 시간 맛을 탐닉하며 이를 즐기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왔다. 과거 음식의 맛을 탐닉하는 것은 왕이나 귀족,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으며, 일반인들에게는 사치에 가까웠다. 그러나 근현대에 들어 먹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우리는 음식의 맛을 더욱 풍족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이를 ‘미식(美食)’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미식의 역사는 인류 문명과 함께한 음식 문화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거치며, 미식의 개념 또한 진화해왔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에서는 음식을 사치스럽게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기도 했다. 당시 왕실이나 상류층은 음식을 풍요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기며,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을 활용했다. 중국에서도 미식 문화는 오랜 역사를 지니며 발전해왔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와 한대(漢代)를 거치며 음식은 단순한 생존 수단을 넘어 신분과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에 와서 ‘미식’은 단순한 음식 탐닉을 넘어, 음식의 기원과 조리법, 그리고 음식과 음료의 페어링 등 먹는 행위 전반을 고려하는 문화적·예술적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식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다만, ‘미식’이라는 개념보다는 방송을 통해 맛집을 찾아다니는 형태로 대중에게 인식되어왔다. 최근에는 요리사가 중심이 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식을 다루고 있지만, 이것이 음식 자체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듯하다. 또한 방송의 여러 제한적인 요소로 인해 음식과 함께 이야기되어야 할 술의 이야기가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음식과 술은 각각 독립적인 맛을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 만나면 맛을 증폭시키거나 새로운 풍미를 창출할 수 있다. 음식과 술의 페어링은 단순한 소비 행위를 넘어, 미식 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음식과 술의 조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중 하나가 ‘마리아주(mariage)’다. 마리아주는 "마실 것과 음식의 조합[궁합]이 좋은 것(특히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의미함)”을 뜻하며, 최근에는 ‘페어링’이라는 표현도 널리 쓰이고 있다. 미식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음식과 어울리는 주류의 페어링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술은 단독으로 마시는 것보다 음식과 함께 즐기는 경우가 많으며, 그 조화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미식에서 페어링이라 하면 와인이나 사케 등 수입 주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심지어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도 와인을 페어링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급 식당에서도 와인만을 고집하기보다, 사케나 전통주 등을 함께 제공하며 음식과의 조화를 고려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전통주의 가치가 점차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많은 식당에서는 ‘전통주 페어링’ 하면 막걸리는 전, 약주는 국물 요리와 같은 정형화된 조합을 떠올리지만, 점점 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 요리와 전통주의 페어링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기존의 일식이나 서양 요리에 한정되지 않고, 중식, 지중해식, 동아시아 요리 등과의 페어링을 시도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요리가 아닌 치즈, 초콜릿, 빵 등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핑거푸드와 전통주의 조합도 지속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음식과 술의 페어링은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정답이 정해져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음식과 술의 페어링 방식도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통주 또한 단순히 마시고 취하는 술이 아니라,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주류로 발전해야 한다. 미식의 세계는 넓으며, 음식에 어울리는 다양한 전통주는 충분히 발굴할 수 있다. 우리가 음식과 전통주의 페어링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고민한다면, 전통주의 소비처는 한식당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 식당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주가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조화를 이루며, 어느 식당에서나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지방농업연구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