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작년 12월 3일 밤에 벌어진 어설픈 계엄의 뒷정리를 하느라 선거의 한복판에 있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 남았다. 지금까지의 선례를 보면 여야가 모두 득표 전략 이외에는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거가 되려면 과정부터 참신해야 한다.
역대 한국의 선거를 우습게 만든 여러 요인 중의 하나가 지켜지지 않는 공약이었다. 아무 말이나 듣기 좋은 소리는 다 하며 당선된 후보에게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면 ‘선거 때 한 얘기를 가지고 뭘 그렇게 따지냐’고 이상한 사람 취급하거나 ‘알고 보니 상황이 다르다’고 얼버무리는 것이 상례였다. 실정이 이러하니 선거 과정에서도 정치인들은 정책보다는 정무적 판단이 중요하다며 인물을 내세우기 마련이었다. 집권 경험이 있는 정당도 선거철마다 외부 전문가를 불러 공약을 개발하다 보니 정당원들도 모르는 공약이 수두룩하다. 후보의 개인기와 사조직이 위력을 발휘하는 인물 중심의 선거를 치르다 보면 정당의 조직이나 역량의 발전이 지체된다. 따라서 대목을 맞은 홍보기획사와 브로커의 시간이 온다.
지금까지 경험한 대선을 돌이켜 보면 후보들이 유권자에게 전달하기 쉽고 지지받기 쉬운 공약을 내걸고 전국을 누비다 보니 당의 공약이 비슷해진다. 예를 들면 모든 정당이 수도권에 신도시를 추가로 만들고 철도를 고속화한다는 집값 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이는 인구의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시키는 정책이다. 반면에 이들은 수도권을 벗어나 인구 유출로 힘들어하는 지방에 가면 지역 활성화를 지원한다고 갖가지 개발을 약속한다. 같은 후보의 정책이 서로 충돌해도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정치 현실이다.
엉터리 공약을 당선자가 이행하면 더 큰 사고가 터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도권의 과밀과 지방의 공동화라는 난제에 대한 입장은 정치인의 자질과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경기, 서울,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은 국토의 약 11.8%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다. 좁은 땅에 밀집해 부대끼며 살고 있으니 사건, 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반면에 한 표가 아쉬운 대선, 총선 후보들은 유권자가 많은 수도권의 편익을 증대시키는 개발 공약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후보가 당선되어 공약을 이행하면 국가적으로는 불행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활주로에서 고추 말린다는 지방공항도 비슷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애물단지였다. 윤석열 정권은 출생률 저하의 여파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지방대학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산업경쟁력 향상이라는 명분으로 수도권 대학에 정원을 늘려주고 반도체학과를 신설하도록 권유했다. 이러한 정책도 국가 전체를 생각하면 자원의 낭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오히려 지방대학에 투자해야 조금이라도 국토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된다.
스케일 큰 진짜 정치인은 지지자들이 서운하게 생각하더라도 국가 구성원 다수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고 추진하는 진정성을 갖춰야 한다. 이와 같은 요구를 일단 선출되어야 정치 생명이 연장되는 직업 정치인들이 스스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결국 각성한 유권자들이 후보를 잘 감시해 언행이 일치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수밖에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시민을 위한 정치 교육도 필요하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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