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성 꼬리가 때에 붙어 친수성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는 비누의 세정 원리를 묘사한 그림. (이미지=게티이미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비누를 맨 처음 사용한 곳은 기원전 28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 제작된 수메르의 점토판에는 기름과 재를 섞어 만든 세정제 같은 물질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기원후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사망한 플리니우스(Plinius)는 기원후 1세기 당시의 인류 문화를 기록한 『박물지(Natural History)』에서 동물성 지방과 재로 만드는 비누가 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고 갈리아인은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는 데 비누를 사용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비누를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재는 너도밤나무와 느릅나무의 재이며 비누에는 고체와 액체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비누는 게르만족이 많이 사용했으며 특히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많이 사용한다고 전했습니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58년경 갈리아인들이 사용하는 순한 비누를 접하기 전까지는 비누보다는 기름을 피부에 문지르고 일종의 긁개인 스트리길(strigil)로 때를 긁어내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기원후 2세기, 그리스 출신 의사 갈레누스(Galenus)는 우리가 흔히 양잿물이라고 하는 가성소다를 이용한 비누 제조를 설명하고, 신체와 의복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비누 세척을 권장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개인 위생을 위한 비누 사용이 점차 보편화되었습니다. 갈레누스에 따르면, 가장 좋은 비누는 게르만에서 생산된 것이었고, 갈리아 비누는 두 번째였습니다.
레반트 지역에서는 비누를 만들 때, 전통적으로 동물성 기름 대신 올리브유를 사용했습니다. 올리브유 침전물을 구리 솥에 넣고 나무를 태운 재와 소량의 생석회를 넣고 저어주다 식히면 우리가 쓰는 비누와 비슷한 세정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동물성 기름을 사용한 비누는 냄새가 좋지 않아 향료를 넣기도 했습니다. 향료로 쓰이는 식물들은 라벤더, 로즈마리, 타임, 장미, 금잔화, 카모마일, 자스민 등 매우 다양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도 조각자(早角刺)나무 열매를 사용하여 비누와 유사한 세정제를 만들었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지 않았고 동물성 지방으로 만든 비누는 근대에 와서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비누가 처음으로 언급된 문헌은 16세기에 쓰인 순천김씨 묘에서 출토된 간찰(簡札, 편지)입니다. 여기에 ‘비노’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비누를 지칭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몽골어 ‘비나’ 혹은 ‘비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다 확실한 근거가 없는 설에 불과합니다.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이 13년 동안 조선에 체류하면서 서양식 생활용품에 대한 정보를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사용되는 형태의 비누가 이 시기에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1791년, 프랑스의 화학자 니콜라 르블랑(Nicholas Leblanc)은 최초의 비누 제조 공정을 특허로 등록했습니다. 오늘날 목욕용, 주방용, 세탁용 등 다양한 용도의 비누가 사용되고 있으며 시장 규모는 연간 500억달러에 이릅니다. 수많은 종류의 세정제와 소독제가 넘쳐나지만, 인체와 생활환경의 청결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세정제가 물과 비누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비누의 미셀(micelle) 구조. (이미지=위키피디아)
비누의 세정 메커니즘
비누가 세정 작용을 하는 원리는 비누 분자의 독특한 구조와 성질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비누 분자는 물을 좋아하는 친수성(親水性) 머리 부분과 기름을 좋아하는 소수성(疏水性) 꼬리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비누는 물과 기름을 동시에 다룰 수 있으며 그 결과 세정 작용이 일어납니다.
일상생활에서 피부나 손에 묻는 때나 더러움은 대부분 먼지, 기름, 피지 등 다양한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가운데 기름 성분은 물과 섞이지 않아 물만으로는 제대로 씻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누를 사용하면, 비누 분자의 소수성 꼬리가 기름때에 달라붙고, 친수성 머리는 물과 결합하려는 성질을 이용해 ‘미셀(micelle)’을 형성합니다. 미셀은 비누 분자들이 기름을 감싸서 만든 구형 구조로, 내부에 기름을 가두고 바깥쪽은 물과 잘 섞이는 상태를 유지합니다. 이렇게 미셀 구조가 만들어지면, 그 안에 갇힌 기름과 때는 흐르는 물에 의해 피부로부터 쉽게 제거됩니다.
비누는 단순히 먼지나 기름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세균과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을 없애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는 지방질로 구성된 세포막이나 외막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누의 소수성 꼬리는 이 지질막을 파괴하거나 녹여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병원체는 구조적으로 파괴되어 생존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물에 씻겨 나가면서 감염 가능성을 줄이게 됩니다.
비누의 세정 효과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는 손을 문지르며 최소 20초 이상 비누로 씻는 것이 좋습니다. 물의 온도보다는 비누를 사용하여 손을 골고루 문지르는 행위가 더 중요합니다. 손을 문지르는 동작은 비누 분자들이 오염물질에 더 잘 침투하고, 이를 분해하거나 감싸서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처럼 비누는 그 화학적 성질과 작용 메커니즘을 통해 오랫동안 인간의 위생과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를 잡아왔습니다.
나에게 맞는 비누를
비누를 고를 때는 자신의 피부 타입과 피부 고민, 그리고 성분의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게 중요합니다.
먼저 피부 타입에 따라 적절한 비누를 선택해야 합니다. 건성 피부의 경우, 글리세린이나 시어버터, 천연 오일처럼 보습력이 뛰어난 성분이 함유된 비누가 좋습니다. 반면 지성 또는 여드름성 피부는 피지 조절과 항균 작용을 도와주는 살리실산, 티트리(teatree) 오일, 숯, 황 성분이 들어간 비누가 적합합니다. 민감성 피부라면 인공 향이나 색소, 알코올이 없는 약산성 저자극 비누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비누에 포함된 성분 중 피부 자극 성분이 있는지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합성 계면활성제(SLS, SLES 등)는 세정력은 강하지만 피부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인공 향료나 색소, 알코올 등도 민감한 피부에는 트러블을 유발할 수 있어 피하는 게 좋습니다.
비누의 산도(pH) 수준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의 피부는 약산성(pH 4.5~6)인데, 일반적인 고체 비누는 알칼리성(pH 9 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피부 보호를 위해 약산성 비누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누의 사용 목적에 따라서도 제품을 달리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얼굴용 비누는 순하고 보습력이 뛰어나야 하며, 몸 전체를 위한 비누는 비교적 강한 세정력도 무방합니다. 샴푸를 사용할 때는 두피 타입에 맞춰 유분 조절과 보습력을 고려하여 제품을 선택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라면 천연 성분을 사용하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으며, 플라스틱 포장을 최소화한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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