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뱀독에 면역?"…자가 실험에서 출발한 획기적 항혈청 연구
매년 540만명이 뱀에 물리고 10만여명 사망
의료 접근 어려운 곳에선 심각한 보건 문제
성공적인 뱀독 항체 발견, 윤리적인 문제 제기 뒤따라
2025-05-09 10:24:41 2025-05-09 14:19:45
뱀독을 소량 주입하거나 자신이 기르는 뱀에 의도적으로 물려 뱀독에 대한 자가 면역을 실험해온 팀 프리데. (사진=Centivax)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적으로 매년 540만명이 뱀에 물리고, 그 중 최대 27만명이 중독되어 13만명 가까이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약 3배에 이르는 사람들이 절단이나 기타 영구적인 장애를 겪습니다.
 
독사에 물리면 호흡을 멈추게 하는 마비, 치명적인 출혈로 이어지는 혈액응고 장애, 회복이 불가능한 신장 손상, 그리고 영구적인 조직 괴사로 팔다리 절단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피해는 주로 농업 종사자와 어린이에게 집중되며, 어린이는 체중이 적기 때문에 성인보다 더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독사에 물리는 사고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물지만, 인도,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흔히 발생합니다. 특히 의료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는 사망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뱀독에 대한 면역 가능성을 제시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가 실험으로 시작된 ‘프리데 항체’의 발견
 
2001년, 트럭 정비사이자 뱀 애호가였던 팀 프리데(Tim Friede)는 맹독성 뱀에 물리는 상황에 대비해, 극소량의 뱀독을 반복적으로 주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뱀을 수집했고, 이후 코브라, 맘바, 타이판 등 치명적인 독사를 포함한 컬렉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면역계를 훈련시켜 항체를 직접 생성하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말이나 양을 독에 노출시켜 항체를 생산하는 방식과 유사했습니다. 850회 이상의 주사와 200회 이상의 가벼운 뱀 물림을 자발적으로 경험한 프리데는,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자가 실험의 성공을 입증한다고 주장합니다.
 
2016년, 프리데가 출연한 온라인 프로그램이 면역학자 제이콥 글랜빌(Jacob Glanville)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글랜빌은 병원체의 공통 구조에 결합하는 항체를 개발해 보편적인 백신을 만들고자 해왔으며, 이 개념을 뱀독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센티백스(Centivax)를 설립하고, NIAID의 백신학자 피터 퀑(Peter Kwong)과 함께 이 가능성을 연구했습니다. 
 
인간 유래 항체 부작용 적어
 
글랜빌과 퀑은 인간 유래 항체를 이용한 항혈청 개발에 주목했습니다. 기존 말·양 유래 항체는 심각한 면역 반응을 유발할 수 있어 병원에서만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지만, 인간 유래 항체는 이런 부작용이 거의 없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생명공학 스타트업 센티백스와 국립 알레르기 및 감염병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 NIAID) 연구팀이 5월2일 국제 학술지 <셀>(Cell)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프리데의 혈액에서 얻은 항체는 실험용 생쥐를 19종의 독사에서 나오는 치명적인 신경독으로부터 보호했습니다.
 
뱀독 연구자들은 이번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체 유래 항체는 동물 유래 항체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면역 반응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센티백스 연구진, 인간 유래 항체로 생쥐 실험 성공
 
연구팀은 프리데의 혈액세포에서 항체 집합을 제작하고, 검은 맘바(Dendroaspis polylepis), 케이프 코브라(Naja nivea), 타이판(Oxyuranus scutellatus), 인도 살무사 (Bungarus caeruleus) 등에서 나오는 긴 아미노산 사슬로 구성된 ‘롱체인(long-chain) 신경독에 결합하는 항체를 선별했습니다.
 
그 중 하나인 LNX-D09 항체는 실험된 24종 중 22종의 뱀독에 결합했습니다. 하지만 LNX-D09 단독으로는 일부 독성에 대해서만 효과를 보였으며, 충분한 보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연구팀은 LNX-D09에, 쇼트체인(short-chain) 신경독에 결합하는 항체 SNX-B03, 그리고 강력한 독성 성분 가운데 하나인 인지질분해효소(phospholipase) A2를 억제하는 약물 바레스플라딥(varespladib)을 조합한 3종 칵테일을 개발했습니다. 이 조합은 19종의 주요 독사과(Elapid) 뱀독을 주입한 생쥐를 완전히 보호하거나 생존 시간을 유의미하게 연장했습니다.
 
전문가들, 윤리·실효성·지역 특화 필요성 등 지적도
 
일부 학자들은 프리데의 자가 실험 방식에 윤리적 우려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인도 과학연구소의 카르틱 수나가르(Kartik Sunagar)는 “연구 자체는 훌륭하게 수행되었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들이 윤리적인 측면에서 우려를 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프리데 본인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뒤를 따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자가 면역 실험을 고려 중인 사람들의 조언 요청도 거절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공과대학교의 독소학자 안드레아스 라우스트센-키엘(Andreas Laustsen-Kiel)은 “이번 연구는 우수한 항체와 재조합 항혈청이 과학적으로 설계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험에 사용된 뱀독의 양이 실제 상황보다 적기 때문에 효과가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전 세계에 널리 작용할 수 있는 항혈청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효과가 확실한 항혈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글랜빌은 “궁극적으로 지역 특화형이 아닌, 보편적으로 사용 가능한 항혈청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어떤 뱀이 물었는지 알 수 없을 때 사용할 수 있는 혈청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이 선정한 19종의 뱀은 세계적으로 약 300종에 달하는 엘라피드 종을 대표하는 뱀들입니다.
 
다만, 이 칵테일은 주로 조직과 심혈관계를 공격하는 살무사 계열의 독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으며,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항체를 개발 중입니다.
 
리버풀 열대의학대학원의 독소학자 니콜라스 케이스웰(Nicholas Casewell)은, 이번 실험이 뱀독과 항체를 동시에 주입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며, 실제 인간에게 적용하려면 독에 물린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항체를 투여하는 방식의 실험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면도 “이번 연구는 뱀독 치료의 미래를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프리데의 항체가 실제 인간용 치료제로 개발되더라도 대량 생산이 경제적으로 가능한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라우스트센-키엘은 알파카 등 낙타과 동물이 생산하는 ‘독소결합 나노항체(toxin-binding nanobody)’와같이 인공지능이 설계한 항체들이 더 저렴하면서도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뱀독에 대한 면역력을 가진 항체와 약물 혼합제제를 개발한 센티백스의 대표 제이콥 글랜빌. (사진=Centivax)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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