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사법개혁 논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7년 사법농단 사태 이후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엔 개혁 논의가 제기됐고,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여러번 발의됐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되거나 계류됐습니다. 각론에선 검찰개혁에 밀리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이 필요할 때만 개혁안을 꺼내드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최근 민주당은 조기대선 시즌에서 사법개혁을 다시 화두로 꺼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된 게 직접적 계기입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결정을 '사법부의 정치개입'으로 규정하고 나섰습니다.
26일 이 후보의 대법원 파기환송심 판결을 놓고 결국 전국 법관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열기로 했습니다. 법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심'과 사법에 대한 '신뢰 훼손 문제'에 대해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논의하고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취지입니다. 이 후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정치개입이라는 지적이 법원 안팎으로 들끓자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겁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법원 파기환송심 판결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를 열기로 결정한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사진=뉴시스)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에 대해 파기환송을 선고한 직후부터 사법개혁에 관한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정진욱 의원은 대법원 판결을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으로 다퉈볼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김용민 의원은 대법관 수를 기존 14명에서 3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민형배 의원은 대법관 중 3분의1 이상을 판·검사가 아닌 사람으로 임명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급기야 장경태 의원은 지난 8일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100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물론 사법개혁에 대한 성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법원행정처 폐지나 사법행정위원회 신설 법안은 20·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높은 국민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계류 후 폐기됐습니다. 먼저 2020년 1월 박주민 의원이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와 함께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1대 총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흐지부지 됐습니다. 판사 출신인 이탄희 전 의원도 2020년 7월 법원행정처를 전면 폐지하고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대법관 수 증원 등 관련 법안도 이미 지난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역시 계류 후 폐기됐습니다. 2020년 8월 이탄희 전 의원은 대법관을 14명에서 48명으로 증원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키도 했습니다. 이 전 의원은 지난해 5월23일에는 대법관인 처장 외에는 법원행정처에 법관을 두지 못하게 하는 법원조직법 등을 발의했습니다. 법원행정처를 대법관인 처장 이외에는 사법행정을 주업무로 하는 공무원을 중심으로 구성하게 함으로써 재판독립을 강화하고, 부족한 법관 인력을 재판업무에 집중하도록 하여 재판지연 해소를 꾀하고자 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민주당 국회의원 비상행동 최기상, 김남근, 신영대, 민병덕, 김태년, 진선미 의원 등이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과 관련, 규탄 및 대선 개입 저지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사법개혁 관련 법안 발의와 폐기가 지속되자 민주당이 이번에는 사법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지 '의지'를 의심하는 시선도 여기서 비롯됩니다. 민주당 내에서는 국민적 바람이 모인 만큼, 의지만큼은 분명하게 가지고 갈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박균택 의원은 사법개혁과 관련한 민주당 입법 방향과 관련해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는 분명하게 가지고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판사 몇 명이 국민 위에서 나라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오만의 극치"라며 "이번에도 개혁을 미룬다면 민주당이 엄청난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런 사안은 시간을 끌지 말고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법관 증원이나 법원조직법 개정 같은 실질적인 개혁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이 침묵하는 부분을 입법으로 채우는 건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본다"면서 "민주당이 의욕은 좋은데 (현재) 너무 서두르다 보니 이런 식은 아쉽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이 이번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만큼 사법개혁을 방기하지는 않겠지만, 법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되 섣부르게 하지 말라한 겁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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