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 진보의 고민과 새로운 제안
2025-05-16 06:00:00 2025-05-16 06:00:00
지난해 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패배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성찰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의 진보적 정치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과 데릭 톰슨이 함께 쓴 책 『풍요를 위한 건설: 미국이 잃어버린 역량과 되찾을 미래』(Abundance: How We Build a Better Future)가 주목받고 있다. 클라인은 이 책에서 민주당 패배 원인을 노동계층의 이탈이나 트럼프 반대에만 집중한 전략 오류 등과 같은 기존의 분석을 넘어 민주당의 통치 역량, 특히 자신들이 통치하는 블루 스테이트나 대도시 지역에서의 통치 능력 부족과 연관시킨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민주당 집권 지역에서 정부의 비효율성과 그에 따른 높은 생활비 문제로 보통 사람들의 삶이 악화된 것이 트럼프 당선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이는 4년 전과 달리 공화당 후보를 선택하는 쪽으로 표심이 가장 크게 변화한 지역이 바로 민주당 지방정부 집권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예를 들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는 공화당 쪽으로 11% 포인트, 시카고의 쿡 카운티는 8% 포인트, 뉴욕시 대도시권의 퀸즈 카운티는 21% 포인트 트럼프 쪽으로 이동하는 등,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던 곳에서 역설적인 투표 결과가 나타났다. 
 
클라인은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 담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비전은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가 부족함 없이 제공되는 '풍요', 즉 양질의 저렴한 주택, 풍부한 청정에너지, 효율적인 인프라 구축 등 국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한다. 이러한 비전은 유권자에게 희망과 동기를 부여하고, 정부 비효율에 지친 국민들에게 정부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놀라운 결과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줌으로써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기반이 된다. 
 
클라인은 여기에 더해 이러한 담대한 비전이 새로운 통치 문화와 결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때 통치 문화는 정책을 수행하는 방식, 즉 정책의 우선순위, 절차, 책임 소재 등을 포함하는 개념을 뜻한다. 기존의 통치 문화에서는 정부의 정당성을 결과가 아닌 절차에서 찾으려 한다. 클라인은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실패가 그들의 목표나 가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목표를 실제로 달성하는 방식에 있으며, 과도한 절차 중심의 비효율적인 통치 문화가 그들의 좋은 이념적 목표 달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 그는 절차의 준수 그 자체보다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는 방식으로 정책 수행 방식을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클라인의 진단과 제안은 한국 정치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우리나라 역시 높은 주택 가격, 생활비 부담, 정책 실패 등 미국과 유사한 문제들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배제된 사람들의 삶을 중히 여기고 보통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과 규칙을 바꾸는 비전과 방법론이 필요한 시점에서, 공급 측면의 문제를 진보 의제로 가져오고 정부 개혁을 잃어버린 역량을 되찾고 풍요를 건설하자는 클라인의 제안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결국 정치의 역할은 단순히 사악한 세력을 심판하는 것을 뛰어넘어, 정부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국민 삶에 체감되는 실질적인 결과를 제공하는 것임을 '풍요'라는 제목의 이 책은 역설한다.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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