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동강에서 사라지고 있는 비오리
2025-05-27 13:11:47 2025-05-27 16:28:56
강원 영월 동강에서 비오리 가족이 헤엄쳐 다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곳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강원도 동강을 이야기해요. 강원도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정선, 평창, 영월을 흐르는 이 강은 영월의 동쪽을 지나기에 ‘동강’이라 불리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곳은 비오리(common merganser)의 대표적인 번식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00년 6월 15일 환경의 날, 김대중 정부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추진한 동강댐 건설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어요.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강의 비오리 번식지 지키기’였어요.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약 65km에 이르는 동강에서 7~12마리의 새끼를 이끌고 먹이를 찾아 강변을 오가는 비오리 가족을 만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댐 건설 계획도 중단하고 보호지역으로 지정한 동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늘어야 할 비오리 개체수가 오히려 줄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비오리는 잠수성 오리로, 주로 물고기를 잡아먹어요. 가늘고 긴 부리 안에는 뱀처럼 작은 이가 촘촘히 나 있어, 잡은 물고기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요. 몸길이는 약 65cm 정도인데, 여름에는 수컷과 암컷이 비슷하지만 겨울이 되면 수컷은 갈색 머리가 짙은 녹색으로 변하고 등도 잿빛에서 검은색으로, 가슴과 몸은 흰색으로 변해 성별 구분이 쉬워집니다. 겨울철 비오리는 전국의 하천에서 쉽게 볼 수 있어요. 대부분 러시아, 중국, 몽골에서 추위를 피해 날아온 겨울철새지만, 일부는 한반도에서 번식한 개체들도 있답니다. 개발이 덜 진행되고 자연경관이 좋은 강원도 동강 출신이지요. 특히 동강은 비오리가 번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어요. 천적이 접근하기 힘든 급경사 절벽과 석회암이 만들어낸 천연 굴이 많아 비오리가 둥지를 틀기에 더없이 훌륭한 환경이지요. 
 
5월 중순 무렵이면, 동강의 강변에 비오리 가족의 모습이 종종 목격됩니다. 수풀이 우거진 강가, 바위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은 대부분 비오리랍니다. 가끔 어미 등에 올라탄 어린 새도 보이는데, 대부분은 7마리 이상 대가족이에요. 무려 15마리의 어린 새들을 거느린 어미도 만난 적이 있어요. 비오리는 암컷 혼자서 어린 새들을 돌보며, 바위틈이나 수풀 사이를 다니며 먹이 사냥을 훈련시키죠. 지친 어린 새는 등에 태우고, 안전한 곳에서는 옹기종기 모여 휴식도 취해요. 새끼들이 조금 자라면 강을 건너는 모험도 시도하는데, 어미는 어린 새들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여유를 부리기도 합니다. 
 
비오리가 자신의 영역에 먹이가 부족하자 작은 물고기를 잡는 논병아리를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가족도 날이 지날수록 하나 둘 낙오자가 생깁니다. 갓 부화한 어린 새들은 어미를 따라다니며 스스로 먹이사냥을 하지만, 거친 물살에 휩쓸리거나 먹이 사냥에 열중하다 가족 무리에서 떨어져 들고양이나 맹금류 같은 포식자의 먹이가 되기도 하죠. 결국 6월이 지나면 살아남는 어린 새는 세네 마리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시기쯤 되면 어린 새들은 병아리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어미와 비슷한 형태로 성장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춥니다. 
 
그런데 동강에서 번식하는 비오리는 왜 줄어들고 있을까요? 기후변화라는 큰 흐름도 있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동강의 물고기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동강에서 대를 이어 어로 활동을 해온 주민 우문제(63)씨는 10여년 전부터 동강에 민물가마우지가 급격히 늘며 물고기를 잡아먹더니, 이제는 물고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합니다. 
 
비오리 개체수 감소의 결정적인 원인은 이 민물가마우지 떼로 추정합니다. 원래는 동남아와 중국 남부에 주로 서식하던 민물가마우지가 최근 몇 년 사이에 한반도 전역에서 급격히 늘어났어요. 포식자가 없는 환경에서 급증한 이들은 이제 유해 조수로 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있어요. 동강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물고기를 두고 이들과 경쟁에서 밀린 비오리가 결국 번식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죠. 
 
기후변화로 인해 동남아와 중국에서 한반도로 대량 이주한 민물가마우지가 비오리의 터전을 차지한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동 경로와 생존 전략을 바꾼 생물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기존 생태계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균형의 붕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좋은 조건에서 살기 위해 이주한 민물가마우지를 탓하기보다는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균형 있게 생존하는 해결책을 살펴야 할 시기입니다. 
 
글, 사진=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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