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문명과 라오인 이야기)⑫한국인이 몽족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
베트남전 흔적 따라 떠난 지뢰 답사
몽족의 분열된 역사와 냉전의 상흔
몽족 풍속에서 발견한 한국과의 유사성
2025-06-02 06:00:00 2025-06-02 06:00:00
동남아시아인도차이나 반도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1. 2014년 건기
 
라오스의 기후는 크게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건기 초에는 습도가 낮아 쾌적하고 환상적인 날씨가 이어진다. 12월부터 2월까지는 한국의 봄 가을과 비슷한데, 그 가운데서도 가을 날씨에 가깝다. 한두 달 사이 비가 한 번 정도 와주면 운수 좋은 날로 느껴질 정도다. 
  
건기를 맞이해서 벼르고 별렀던 라오스 고산지대 여행을 결심했다. 여행에 무슨 결심까지 필요하겠느냐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라오스 인구 1인당 1톤의 폭탄을 맞은 셈이라는 베트남전쟁 현장을 눈으로 보고 싶었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제 지뢰자문그룹 MAG 활동에도 관심이 있었다. 라오스 지형이 험악한 탓에 불발탄, 특히 지뢰 제거는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실직의 위협이 낮은 일이라 한다. 
 
건기에 몽족은 부업으로 억새를 꺾어다 말려서 판다. (사진=우희철 작가)
 
여행 준비를 위해 MAG 라오스 지부 사무실과 정부 산하 불발탄 제거 기구인 UXO Lao에 방문해서 정보를 모았다. 주요 목적지는 싸이쏨분주 롱쩽. 말레이산 군용 바이크를 타고 오지를 누비고 다니는 지인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그가 모는 바이크 뒷좌석에 달라붙어 롱쩽을 향해 출발했다. 비엔티안에서 롱쩽까지 거리는 250km 남짓인데 90km만 포장길이고 나머진 비포장이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훌쩍 지났어도 구글지도에는 목적지까지의 예상 소요 시간은 6시간43분이었다. 롱쩽으로 가는 길에는 해발 2830m로 라오스에서 가장 높은 산인 푸비야가 있다. 
  
비포장길이 시작되는 곳부터 몽족 세계였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이어졌다. 몽족의 어르신들은 라오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아이들은 낯선 이방인을 보고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몽족 집은 초가거나 너와집이었다. 마을에 소문을 내서 지뢰밭을 안내할 사람을 찾았다. 화전을 일구는 농부가 길잡이로 앞장섰다. 산길을 걸으면서 지뢰를 밟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허당 짚고 미끄러져 정강이가 10cm 정도 찢어졌다. 진짜로 무서운 것은 죽음보다 장애란 것을 깨닫고 있었다. 농부는 오솔길 옆 나뭇가지로 만든 작은 십자 표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내가 본 첫 지뢰였다. 이렇듯 허술한 모양을 보니 수백명이 희생된 해도 있었다는 말이 실감됐다. 
 
몽족 마을이 있는 곳엔 반드시 군부대가 있다. 몽족 전체가 집권당이 된 인민혁명당 전선 조직인 빠텟라오에 대항한 건 아니지만, 많은 몽족이 반군으로 활동하거나 부역을 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베트남이 함락되고 왕빠오장군과 그의 간부들이 망명길에 오르자 미처 탈출하지 못한 병사들은 ‘짜오파’라는 게릴라 잔당이 돼 토벌 대상이 됐다. 몽족도 내부에 부족과 씨족이 많아 통일적 이해를 갖는 게 아니어서 인민혁명당을 지지하는 몽족은 ‘빠차이’라는 이름의 토벌대가 됐다. 왕빠오가 몽족 영웅이듯, 빠차이는 1920년까지 베트남과 라오스 북부에서 항불 투쟁을 조직한 전설적인 몽족 영웅이었다. 왕빠오부대가 우익군이라면 빠차이는 몽족 좌익군 이름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남북과 좌우로 갈려 동족상잔을 겪어야 했듯 인도차이나전쟁에 휩쓸린 몽족 처지도 비슷했다. 공식적으로 베트남전쟁은 1975년에 끝났으나 오바마가 라오스를 방문한 2016년에도 짜오파에 의한 기습 총격으로 중국인들이 사망하면서 정부군과 교전이 있었다. 1953년 휴전이 됐으나 지리산으로 들어간 빨치산이 오랫동안 소수로 남아 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억새를 끊어오는 몽족 소녀들. 몽족은 생활력이 강하다. (사진=우희철 작가)
 
베트남전이 끝난 지 40년 이상이 돼서 이제 게릴라부대로 보기도 어렵고 정부군도 토벌을 심하게 하지 않는 상태가 됐다. 그러나 짜오파들 터전이 위협을 받으면 가끔 총격을 가하기도 하기에 경계를 심하게 한다. 롱쩽으로 진입하기 위해 물소뿔산을 넘어가자면 4~5번 검문을 당하기도 한다. 
  
지뢰 답사 사흘째 드디어 롱쩽에 도착했다. 미국 항공기 비행장이 있던 CIA 기지이자 우익 왕빠오군 본거지. 본격적 답사를 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비행장과 지뢰밭을 묻고 다녔다. 친구와 가게에서 음료수를 마시는데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주민 신고가 들어갔다. 군인들이 다행히 심하게 적대적이진 않았다. 롱쩽은 군사통제구역이라 출입이 제한되니 돌아가거나 허락을 받아오란다. 간첩 혐의로 심문을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UXO Lao 직원과 같이 올 수도 있었지만 직원 일당까지 부담할 용의는 없었고 태도를 보아하니 협조가 아니라 감시를 당할 수도 있겠단 느낌이 들어 스스로 답사를 왔던 것이다. 
  
롱쩽으로 가는 길은 외통길이라 눈을 피하기 어려웠다. 결국 지뢰 답사는 싱겁게 종극이 되고 말았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하지 않는가. 여행 목적을 몽족 신년 축제 참가로 바꿔 씨양쿠왕주로 들어갔다. 
 
2. 몽족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풍속들  
  
한국인은 나이를 먹는다. 몽족은? 몽족에선 설을 ‘낀찌양’이라 부르는데, 문자 그대로 한 해 두 해라고 할 때 ‘해를 먹는다’는 뜻이다. 이런 사고방식까지 닮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몽족 설을 처음 체험한 곳이 폰싸완이었고, 쏭이란 몽족 아가씨가 집으로 초대해줘 몽족 가족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몽족은 평상시엔 멥쌀밥을 먹고 명절에는 찹쌀로 떡을 해 먹는다. 한국인 명절과 다를 바 없다. 라오인은 주식으로 찹쌀밥을 먹고 볶음밥을 할 때는 안남미를 쓴다. 몽족은 떡메를 쳐 인절미 같은 떡을 만든다. 쏭이 모닥불을 피우고 바나나잎에 싸 인절미를 구워서 줬다. 어릴 때 명절 끝나고 떡이 마르면 구워 먹던 추억이 있었는데, 다시 없을 성찬을 대접받는 느낌을 받았다. 
  
몽족은 새끼줄로 금줄을 친다. (사진=우희철 작가)
 
몽족 집을 방문하면 금줄이 걸려 있다. 새끼줄을 꼬아 만드는 것도 우리와 같다. 금줄엔 나무로 만든 모형 칼이 꽂혀 있다. 몽족은 굿을 자주한다. 굿 성패를 알아보기 위한 방법도 비슷하다. 한국에서 봤던 굿은 마지막에 칼을 던지는 것이었는데, 몽족은 물소뿔을 던져 굿 결과를 점친다. 몽족에게 무당은 혼을 부르는 영매이자 지식인이면서 의사이고 심리치료사로서 존경을 받는다. 
 
몽족의 장례법은 매장이다. 곡도 한다. 한국에선 남자만 곡을 했던 것 같은데 전통복을 입은 몽족 여성들이 집단으로 곡을 하는 게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몽족 신앙을 토템이즘으로 설명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혈연이므로 조상과 선영을 지성으로 모신다. 집집마다 신당이 있고, 집안 한가운데 기둥은 직계 조상 혼이 깃든 곳으로 여기고 초를 켜고 향을 사르면서 가장이 집안 대소사를 보고한다. 
  
몽족 풍속이 과거 우리네와 너무나 흡사해 일각에서 주장하는 고구려 유민 설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최근 유전체 분석이나 언어학을 근거로 할 때 혈연적 관계는 아니다. 나는 고구려 이전 중국 대륙 동쪽에서 벼농사를 하며 몽족 선민과 한민족 선민 사이에 강력한 문명 동조 현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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