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홈페이지의 ‘건강한 직원(Healthy Workforces)’ 화면 캡처.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한국 노동자 2명 중 1명은 최근 2주 안에 우울하거나 불안한 감정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3명 중 1명은 위급 시 사용할 수 있는 비상금이 없고, 절반 가까운 사람이 “고립감을 느낀다”고 응답했습니다.
캐나다의 글로벌 웰니스 기업 텔러스헬스(TELUS Health)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정신건강지수(Mental Health Index, 이하 MHI)’ 조사 결과입니다. 이번 보고서는 국내 직장인의 정신건강 실태를 통계적으로 보여주는 첫 글로벌 벤치마크형 지표여서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조사는 2025년 3월14일부터 27일까지, 국내 거주 노동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온라인 설문을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응답자는 성별·연령·지역·산업별 대표성을 고려해 선정됐습니다. 모든 응답자는 지난 2주간의 정신 상태를 기준으로 질문에 응답했습니다.
정신건강지수 점수 ‘56.1점’…조사국 중 최하위
한국 노동자의 MHI 점수는 56.1점. 조사 대상 8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였습니다. 미국(69.9점), 영국(64.7점), 캐나다(63.1점), 호주(63.0점), 싱가포르(62.9점), 유럽(62.4점), 뉴질랜드(60.6점) 등과 비교하면 한국은 정신건강 ‘고위험군’에 근접하는 수준입니다.
MHI는 응답 내용을 점수화해 100점 만점 기준으로 환산한 지수입니다. 80점 이상은 ‘양호’, 50~79점은 ‘주의 필요’, 50점 미만은 ‘고위험’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이번 조사 결과는 한국 직장인이 일상 속에서 정신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수치로 확인해주는 셈입니다.
여성,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 중부권…취약 계층 집중
특히 이 조사 결과에서 우려되는 점은 특정 계층의 정신건강이 더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의 정신건강 점수는 평균보다 낮았고,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는 평균보다 무려 6점이나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자녀에 대한 걱정이 부모 본인의 스트레스와 정신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별로는 중부권이 53.1점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으며, 그 뒤를 호남권(55.6점)이 이었습니다. 수도권(56.4점), 영남권(56.2점)은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보였지만,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 없는 단계에 머물렀습니다.
이지앤웰니스 강민재 대표는 “MHI는 단순한 심리 조사에 그치지 않고, 국가 간 비교와 시간에 따른 추적이 가능한 정량 지표”라며 “기업과 정부가 구체적인 정책 수립에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동자 직무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 (사진=TELUS Health)
고립감·재정 불안·업무 스트레스…‘3중고’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게 확인됐습니다. 한국 노동자의 47%는 우울감을, 43%는 불안감을, 44%는 고립감을 느낀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35%는 위급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비상금이 없고, 46%는 재정 문제가 주요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답했습니다.
업무 스트레스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8%는 책임감에 압도당한다고 느꼈고, 30%는 정신건강 문제로 인해 업무 생산성에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심리·사회적 부담이 재정적 불안과 맞물려 한국 직장인들은 ‘감정적, 경제적, 조직적 삼중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는 셈입니다.
“정신건강은 기업의 생존 문제”
폴라 앨런(Paula Allen) 텔러스헬스 글로벌인사이트 총괄은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는 단순한 개인 차원의 이슈가 아니라, 조직 문화와 생산성, 기업 지속가능성까지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고 말합니다. 정신적 웰빙을 우선시하는 조직은 직원들의 소속감을 높이고, 업무 몰입도를 향상시키며, 결과적으로 사업 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들이 직원 심리상담과 사내 정신건강 클리닉을 시행하고 있고, 직원 지원 프로그램(EPA, Employee Assistance Program) 기반으로 의료·심리 통합 지원, 온라인 플랫폼 도입, 정서적 안전망 구축, 그리고 휴식과 예방 교육이 결합된 모델을 적용하고 있는 사례들이 있지만 그 수혜 대상은 상당히 적은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정성적 논의에 그치거나 특정 사건 이후 일시적 반응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올해 1월에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는 건강한 리더십, 포용 문화, 유연 근무 등이 직원 정신건강 보호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MHI는 우리의 정신건강 실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직장 내 웰빙 전략’을 수립할 필요성이 있고, 기업과 정부 차원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합니다.
노동자 개인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 (사진=TELUS Health)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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