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압박, 펀드로 유인…트럼프의 '한국 길들이기'
타결 3개국 이어 "한국도 농산물 개방"
트럼프 진짜 노림수는 '한국 기술·투자'
2025-07-17 17:25:38 2025-07-17 17:37:31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영국·베트남에 이어 인도네시아에서도 농산물 시장 개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다음 목표는 '한국'입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칼끝은 '대미 투자'를 향하고 있는데요. 전면엔 한국 내 정치적 반발이 가장 큰 사안을 띄우고, 실제론 투자·기술·공급망 재편 등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입니다. 당장 '4000억달러(약 550조원) 대미 펀드' 조성이 한·미 관세 협상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트럼프가 '농산물'에 집착하는 이유
 
트럼프 대통령은 16일(이하 현지시간) 일본에 예정대로 내달 1일부터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일본보다 한국과의 협상에 더 속도 내려는 듯한 모습인데요. 핵심 키워드는 '시장 개방'입니다. 
 
그는 앞서 지난 13일에도 "한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들이 나라를 개방하고 싶어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직 논의 중인 한국의 시장 개방 문제를 기정사실로 전하며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라"는 압박인 셈입니다. 
 
앞서 미국이 협상을 타결한 국가는 영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총 3개국입니다. 이들 협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관세율 인하 대가로 미국에 농산물 시장을 확대·개방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국가와도 유사한 합의를 끌어낼 태세입니다. 인도네시아와의 협상 타결 직후 "인도와도 기본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진행 중이며, 우리는 인도 시장에 대해서도 접근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본을 상대로는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농산물 시장 개방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의 핵심 지지층이 미국 중서부 농업 지역, 이른바 '러스트 벨트'(공업지대)와 '팜 벨트'(농업지대)라는 데 있습니다. 팜 벨트 유권자들의 요구는 '자국 농산물의 수출 시장 확대'로 명확한데요. 이를 통해 즉각적인 무역수지 개선 성과도 낼 수 있습니다. 반면 자동차·반도체 등 분야는 협상 체결 후 생산·수출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대표적 항목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금지 해제'와 '쌀 시장 추가 개방'입니다. 이 밖에도 블루베리 등 과일류 검역 간소화,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승인 절차 단축 등도 요구 항목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5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카네기멜런대에서 열린 '펜실베이니아 에너지·혁신 서밋'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 (사진= UPI연합뉴스)
 
한국, 영국·베트남·인니와는 다르다
 
그러나 미국에 있어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영국·베트남·인도네시아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협상 내용·수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요. 베트남·인도네시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상 중요한 생산 거점이지만, 경제 구조 측면에서는 노동집약적 조립산업 중심입니다. 
 
미국이 두 국가와의 무역 협정에서 농산물, 항공기, 에너지 수입을 약속받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은 다릅니다. 반도체, 조선, 원자력 등 핵심 산업 전반에서 완성도 높은 제조 체계와 인력풀을 갖췄고,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개발력까지 갖춘 '풀스택'(full-stack) 기술 역량을 갖춘 국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세운 '미 제조업 부흥'의 복판엔 최근 그가 발표한 100조원 규모의 'AI·에너지 투자 계획'이 있습니다. 한국은 핵심 협력국이 될 수밖에 없는데요. 통상당국이 '한·미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도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미국 내 제조업 투자를 위한 공동 투자 펀드 설립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초 제안된 펀드 규모는 3000억달러(약 417조) 선이었으나 협상 과정에서 4000억달러(556조원)로 규모가 상향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국도 같은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 조성 요구를 받았다는 게 기정사실입니다. 통상당국은 관련 보도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는데요. 문제는 '액수'입니다. 한국의 3개월치 명목 국내총생산(GDP)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한·일 경제 규모와 대미 직접 투자액 격차를 감안하면 한국 정부로선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액수입니다. 같은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려면, 조달 여력과 운용 경험 면에서 한국에 훨씬 더 큰 부담입니다. 
 
결국 '농산물 개방'은 이 같은 복합 협상의 전초전입니다. 국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앞세워 압박한 뒤, 실제로는 기술·공급망·투자에서 미국 중심 재편을 유도하려는 전략이란 분석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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