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장서 '개인정보' 누설해도 처벌 못 하는 이유는?
2025-08-12 13:59:33 2025-08-12 14:32:06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대법원은 조합장의 농업협동조합법 위반 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자료들을 수사기관에 제출한 사건에 대해 피고인이 개인정보가 포함된 각 증거 자료를 제출한 행위는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돌려보냈습니다. 
 
앞서 피고인은 전남의 한 농업협동조합에서 경제상무로 근무하다 퇴사한 뒤, 2014년 8월경 나주경찰서에 조합장 A씨에게 농업협동조합법 위반 등의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이때 폐쇄회로TV(CCTV) 영상 자료, 꽃배달 내역서, 무통장입금 의뢰서, 무통장입금 타행송금전표, 거래 내역 확인서 및 지급회의서 등 개인정보가 담긴 자료들을 첨부해 제출한 행위가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자로서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했다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겁니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 위원장이 7월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6회 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피고인은 2017년 5월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했습니다. 항소심은 피고인의 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 누설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2년 11월 피고인의 행위를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 누설에서 제외할 수 없다며 광주지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이후 파기환송심은 2023년 11월 피고인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피고인이 다시 상고했고, 결국 대법원이 피고인 손을 들어줬습니다. 
 
1심은 피고인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지만, 2심은 개인정보보호법의 보호 법익을 고려하면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 누설에는 고소·고발에 수반해 수사기관에 개인정보를 알려주는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게 맞다고 봤습니다.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수사기관이 그 개인정보를 영리나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없고, 누설의 경우에도 그로 인해 수사기관이 불특정 다수에게 이를 유포하는 등으로 개인정보 주체의 사생활이 침해될 개연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개인정보 누설로 본다면, 범죄의 핵심 증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임의 제출할 수 없어 피고소인의 개인정보나 사생활 보호를 위해 피고소인의 무죄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이르게 된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2년 11월 판결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된 취지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망라해 국제 수준에 부합하는 개인정보 처리 원칙 등을 규정하고, 개인정보 침해로 인한 국민의 피해 구제를 강화해 국민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며,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금지하는 개인정보 누설 행위의 주체는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자이고,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로 대상이 제한되므로 수사기관에 대한 모든 개인정보 제공이 금지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피고인의 행위는 개인정보 누설에 해당한다고 보고 2심을 파기했습니다. 
 
파기환송심은 환송 판결의 취지에 따라 피고인의 행위가 개인정보 누설에 해당한다고 보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피고인이 위법행위의 제보라는 공익적 목적보다 조합장 선거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개인적 동기가 더 큰 영향을 미친 점, 피고인이 위 자료들을 제출하지 않았어도 수사기관이 충분히 법령에 따라 수집할 수 있었던 점, 제3자의 개인정보까지 포함돼 있었던 점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소송상 필요한 주장의 증명이나 범죄 혐의에 대한 방어권 행사를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소송 서류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 고소·고발 또는 수사 절차에서 범죄 혐의의 소명이나 방어권의 행사를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증거 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경우에는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해 형법 제20조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때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는 △개인정보 제출자가 개인정보를 수집·보유하고 제출하게 된 경위 및 목적 △개인정보를 제출한 상대방 △제출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 제출인지 여부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 여부와 내용 △제출한 개인정보의 내용, 성질 및 양 △침해되는 정보 주체의 법익 내용, 성질 및 침해의 정도 △개인정보를 제출할 다른 수단·방식의 존재 여부 및 다른 수단·방식을 취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출하게 된 불가피한 사정의 유무 등 개별적인 사안에서 나타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설시했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는 공익적 측면이 있고,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제3자가 수사기관인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개인정보가 포함된 각 증거자료를 제출한 행위는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원심을 깨고 돌려보낸 겁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금지하는 행위의 적용 범위가 넓어 어떤 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되는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안과 같이 법원이나 수사기관 등에 범죄로 의심되는 행위나 그로 인한 피해를 알리고,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 제출하는 경우에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과 다소 괴리가 있는 겁니다. 소송이나 범죄를 알리려는 목적 등을 위해 공공기관에 제출하는 자료에 개인정보가 포함된 경우와 같이 개인정보 주체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적다면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을 명시적으로 제외하는 등 개선이 필요합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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